[아하, 이맛!]살짝살짝 데친 주꾸미, 입속의 밥알 톡톡 터진다

  • 입력 2009년 4월 3일 03시 02분


문어(文魚)는 이름에 ‘글월 문(文)’자가 있다. 선비들은 문어를 물고기 중 으뜸으로 쳤다. 세상에 이름으로나마 ‘글을 아는 물고기’가 또 어디 있을까. 그뿐인가. 문어는 바다 속 낮은 곳에서 몸을 낮추어 산다. 겸손한 선비와 닮았다. 요즘도 양반동네인 경북 안동 영주 의성 등에선 문어가 제사나 잔칫상에 반드시 오른다.

문어 사촌형제쯤 되는 게 낙지와 주꾸미이다. 팔이 모두 8개 있는 문어과 형제다. 뼈는 없지만 나름대로 ‘뼈대 있는’ 집안인 것이다. 오징어 갑오징어 꼴뚜기는 팔이 10개다.

문어과 삼형제는 몸 크기가 다르다. 문어(3m)가 가장 크고, 낙지(70cm)가 그 다음이다. 주꾸미(20cm)는 볼품없는 못난이 막내다. 문어가 팔척장신의 헌헌대장부라면, 낙지는 6등신 미인이고, 주꾸미는 머리와 발이 딱 붙은 숏 다리의 ‘2등신 무녀리’인 셈이다. 이름마저 쭈글쭈글 천덕꾸러기 느낌을 준다.

하지만 못생겨도 주꾸미는 맛있다. 문어의 쫄깃쫄깃 씹는 맛과 낙지의 부드러운 감칠맛을 모두 가지고 있다. 3, 4월 산란기의 주꾸미는 살이 통통하고, 먹통에 밥알이 가득 찬다. 밥알은 주꾸미의 알이다. 영양도 대단하다. 칼로리가 낮으면서도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빈혈에 좋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그렇다. 사람들 입 안에서 주꾸미 밥알이 톡톡 터질 땐, 목련꽃이 한창 입 벌어지고 있을 즈음이다. 문어 낙지는 가을쯤 돼야 주꾸미와 견줄 만하다. 봄-주꾸미, 가을-문어 낙지라고 보면 된다. 봄-도다리, 가을-전어 광어나 마찬가지.

주꾸미는 회나 샤부샤부가 으뜸이다. 살짝 데쳐 회로 먹을 땐 먹통의 검은 먹물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샤부샤부는 육수가 맛을 좌우한다. 40년 경력의 주꾸미 명인 김정임 씨(56)는 ‘그만의 된장육수 비법’으로 유명하다. 김 씨가 운영하는 충남 서천 마량포 동백정 앞의 서산회관(041-951-7677, 041-952-6955)은 평일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된장육수에 팽이버섯 미나리 쑥갓 깻잎 당근 양파 등 야채로 맛을 낸다. 철판볶음도 들깨를 빼놓고는 재료가 거의 같다. 샤부샤부나 철판볶음 모두 맵지 않다. 국물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꼬들꼬들 쫀득쫀득 입 안에 척척 달라붙는다. 작은 것 한 판에(꿈틀대는 주꾸미 7. 8마리가 들어감) 3만 원, 중(中) 4만 원, 대(大) 5만 원.

된장육수에 칼칼한 청양고추와 미더덕을 넣는 곳도 있다. 달래간장으로 비벼먹는 주꾸미 영양돌솥밥도 나왔다. 주꾸미 회는 1인 2만 원 정도면 실컷 즐길 수 있다. 전북 부안 곰소의 가시고기(063-583-6785), 부안 격포의 광주횟집(063-582-8708)이 소문났다.

서울에선 매콤한 주꾸미철판볶음이 많다. 급속냉동 주꾸미라 아무래도 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25년 전통의 서대문 삼오쭈꾸미(02-362-2120, 02-393-2845)의 전골육수는 북어를 4시간 정도 끓인 것. 양념소스는 마늘 고추장 설탕 물엿 등으로 만든다. 주꾸미는 전남 무안에서 직송. 철판구이 1인분 9000원, 전골 1인분 5000원.

주꾸미는 살짝 데쳐야 한다. 오래 삶으면 딱딱해지고 맛이 사라진다. 몸이 붉은색으로 변할 때가 불을 끌 시점이다. 주삼(주꾸미+삼겹살)볶음 땐 삼겹살을 먼저 익힌 뒤, 주꾸미를 살짝 데쳐야 궁합이 맞는다.

주꾸미는 그물뿐 아니라 소라와 고둥의 빈껍데기를 이용해 잡는다. 소라 빈껍데기 등을 줄줄이 매달아 바다 밑에 가라앉혀놓으면 주꾸미가 제 발로 이 속에 들어가는 것. 어부는 소라 껍데기가 달린 줄만 끌어올리면 된다. 갈치 고등어 삼치 같은 생선은 달이 밝으면(음력 14∼18일) 잘 잡히지 않는다. 달이 밝으면 흩어져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린다. 문어 낙지 주꾸미는 초승달이나 보름달(1, 15일)이 뜰 때 잘 잡힌다. 썰물과 밀물의 차가 가장 클 때, 새우 먹으러 연안으로 슬슬 기어 나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력 초하루나 보름 즈음에 값이 싸다는 얘기다. 마침 음력 3월 보름날(4월 10일)이 코앞이다.

주꾸미는 누가 뭐래도 ‘글(文)을 아는’ 문어과 집안이다. 2007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청자 수천 점이 있는 곳을 알려준 것도 주꾸미였다. 당시 주꾸미는 통발 속에서 고려청자를 꽉 껴안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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