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의사 큰뜻 기린 기념관 지어야”

  • 입력 2009년 4월 1일 02시 58분


강인섭 기념사업회장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나라의 수도인 서울, 그것도 관문인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일제의 통치에 항거하는 민족의 의지와 울분을 의거로 표현한 것이지요. 의거 90주년인 올해를 계기로 평생을 애국과 민족정신 고취에 바치신 그분의 뜻을 기리는 기념관 하나라도 지어야 합니다.”

강인섭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장(전 국회의원·사진)은 우리 사회가 강우규 의사의 기념관 하나 없을 만큼 소홀했다고 개탄했다. 강 회장은 “순국 90주기인 내년 11월에야 의거 현장인 서울역에 겨우 동상이 들어서는 실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1월 기념사업회를 맡은 강 회장은 강 의사와는 진주 강(姜)씨 종친. 그의 부친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독립운동 유공자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강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막상 기념사업회를 맡고 보니 암담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로서 강 의사의 위상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의거 90주년이 되도록 그분의 행적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 아니겠습니까.”

그는 강 의사가 안중근 윤봉길 등 다른 의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한 이유의 하나로 직계후손이 사실상 끊긴 점을 들었다. 유일한 혈손이었던 손녀 강영재 여사가 1985년 세상을 떠난 뒤 거의 절손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강 의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이 딸 셋, 작은 아들이 아들 하나를 뒀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큰아들의 막내딸(강 의사의 손녀)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식이 끊겼다는 것. 강 회장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수난과 핍박을 받으며 먹고살기도 힘들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게 당시 현실이었다”고 했다.

강 회장은 25일 기념사업회 조직을 개편하고 첫 이사회를 열었다. 그는 2005년 설립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던 사업회를 추스르기 위해 9명이던 이사진을 18명으로 늘렸다.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 김중위 전 환경부 장관, 이원영 전 스페인 대사, 강신섭 변호사 등이 이사로 초빙됐다.

홍 이사장 등은 의거 90주년 기념 학술대회 개최와 기념관 건립을 비롯한 강 의사의 기념사업을 추진하자는 제안에 “당연히 힘을 보태야 한다”며 흔쾌히 참여했다.

강 회장은 “강 의사를 조명하는 일은 선각자의 삶을 후손에게 가르친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하다”며 “강 의사도 민족교육에 앞장선 교육자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 의사가 옥바라지를 한 큰아들 중건(重建)에게 남긴 유언을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슬퍼하지 말라. 네가 만일 내 사형 받는 것을 슬퍼하는 어리석은 자라면 내 자식이 아니다.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너무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것이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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