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에 스며든 일상성의 두 변주… 비루하거나, 자극적이거나

  • 입력 2009년 3월 24일 03시 04분


○ 인디음악

우울-냉소 가득한 가사

경기불황 영향받은 듯

○ 발라드

독한 제목으로 관심끌기

인터넷 소비문화 반영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그룹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중에서)

최근 인기가요에 ‘일상성(日常性)’을 내세운 노래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위기나 취업난 등이 확산되면서 갈 곳을 잃은 젊은 층의 ‘패배자(loser) 정서’를 비롯해 외국인노동자, 성인전화방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룬 노래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총 맞은 것처럼’ ‘이불을 빨았어’처럼 발라드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한’ 제목들이 나오고 있다. 이는 “빨리 관심을 끌어야 하는 인터넷 소비문화”(음악평론가 김작가 씨)의 일상을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인디음악에서는 우울한 현실을 노래

일상을 다룬 노래들은 주류보다 인디음악에서 확산되고 있다. 최근 1집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해 ‘타바코쥬스’ ‘국카스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우울한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허구한 날 사랑타령 나잇값도 못하는 게 골방 속에 처박혀…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란 걸 잘 알아.”(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절룩거리네’) “내일은 출근해야 하고 주변의 이웃들은 자야 할 시간. 벽을 쳤다간 아플 테고 갑자기 떠나버릴 자신도 없어.”(브로콜리 너마저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우울은 사회나 자아에 대한 냉소로도 이어진다. ‘가진 자 못 가진 자 끝없는 욕망 속에 차라리 죽고 싶은 좀비 떼가 나타났다네. 너도 나도 나도 너를 잡아먹네.’(타바코쥬스의 ‘좀비 떼가 나타났다네’) “거칠은 손을 내밀며 같이 하자고 말을 하는 넌. 불안한 몸짓으로 난 거울을 보며 나를 찾고 있네.”(국카스텐의 ‘거울’)

타바코쥬스 멤버인 백승화 씨는 “영화에서 좀비는 산업사회의 병폐를 대변하는 존재”라며 “이 노래에선 경쟁에 치중해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대를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회 이슈들도 소재가 된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여동생이 생겼어요’란 노래는 “여동생이 생겼어 그녀의 전화번호 060 5882”란 가사에서 보듯 성인전화방을 소재로 했다. 타바코쥬스의 ‘착한 사람 호세’는 상처 입은 외국인노동자의 슬픈 일상을 다뤘다.

음악평론가 배순탁 씨는 “미국 포크나 영국의 브릿팝에서 보듯이 일상은 가요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경기불황이 한국 대중음악에 영향을 미치면서 누구나 공감하는 현실을 노래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 발라드에서도 독한 제목

발라드에서 보이는 독한 제목도 또 다른 일상의 변주다. 가수 태원의 ‘이불을 빨았어’ 프리즘의 ‘빌린 돈 내놔’ 다비치의 ‘사고쳤어요’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과거라면 노래라 상상하기 어려운 독한 제목”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래들은 기존에 주류를 이루는 남녀의 이별이나 사랑을 반복하면서 일상이라는 외피만 쓰고 있다.

발라드에 예상 밖의 제목을 붙이는 이유는 일상화된 인터넷의 영향이 크다. 김작가 씨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성공한 이후 확산된 현상”이라며 “독한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빠르게 눈길을 끌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말했다.

임진모 씨는 “자극을 반복하면 팬들은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한다”며 “일상성을 단순히 상품화할 게 아니라 그 내면의 미학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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