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어쩌지 못한 ‘조선의 불량문인’

  • 입력 2009년 3월 19일 02시 53분


정조 ‘문체반정’ 끝까지 저항 이옥 문집 완역본 나와

18세기 조선에선 소품체 글이 유행했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정치와 도덕을 논하는 고문(古文)과 달리 일상을 다룬 서정적 내용을 일상 어투의 문체로 표현한 글이다. 소품문학이 만연하자 정조는 이를 잡문으로 규정하고, 정통적 고문을 모범으로 삼게 하는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시행했다.

연암 박지원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인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성균관 유생 출신의 이옥(1760∼1815)은 끝까지 저항하며 소품문체를 고집했다. 이로 인해 과거 응시 자격 박탈, 귀양 등 처벌을 받았던 이옥의 작품을 모두 번역한 ‘완역 이옥 전집’(전 5권·휴머니스트)이 나왔다.

이번 전집에는 특히 번역된 적 없는 잡문집 ‘백운필(白雲筆)’이 수록됐다. ‘백운필’의 서문을 보면 이옥을 필두로 한 당시 소품체 글쓰기의 특징이 드러난다.

“백운사(白雲舍)에서 왜 이 글을 썼는가. 이곳은 지루하니 할 일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묵경(墨卿·먹), 모생(毛生·붓)과 더불어 수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조정(朝廷)의 이해관계, 지방관의 잘잘못 등에 대해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야기를 한다면 부득불 새를 이야기하고, 물고기를 이야기하고, 짐승을 이야기해야겠다.”

서문대로 그의 글은 생활 친화적이다. 주변의 사물과, 민담, 풍경 등이 글의 주요 소재.

도요새에 대한 글에서 그는 ‘도요(桃夭)라고 울어 바닷사람들은 그 새를 도요새라 부른다’는 이름의 유래에서부터 ‘부리가 뾰족하고 긴 편이며 몸은 가볍고 다리는 조금 길다’는 묘사까지 세세하게 기록했다.

호랑이를 잡을 만하게 생긴 호응(虎鷹)이라는 새에 대한 이야기, 말(馬)처럼 생기고 돼지고기 맛이 나는 물고기, 허리 아래는 물에 담근 채 떠 있는 인어 이야기 등 기사(奇事)도 채록했다.

‘시골에서 들리는 세 가지 시끄러운 소리’에 대한 글에선 소품문학 특유의 위트가 엿보인다.

“시골에 살면 세 가지 시끄러운 소리가 있는데 씨아(목화씨를 빼는 기구) 돌리는 소리, 아이 울음소리, 개구리 울음소리다. 면화를 꼬지 않으면 베를 짜고 솜옷을 입지 못하며 아이를 기르지 않으면 가계를 이어가지 못하며, 논밭에 물이 없어 개구리가 울지 않으면 장차 가뭄과 흉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즉 이 세 가지 소리는 모두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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