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2001년 첫 사진경매… 8년새 작품값 10배 껑충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8분


■ 국내 사진작품시장 현주소

2001년 6월 제38회 ‘사진과 현대미술전’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서울옥션 경매는 국내 사진작가들에겐 의미 있는 날이었다. 공식적인 첫 사진경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강운구, 구본창, 배병우, 육명심, 주명덕, 홍순태(가나다 순) 등 국내 사진계에서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사진가부터 이정승원, 함경아, 정수진 등 현대미술 작가들까지 총 21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시기는 세계에서 제일 사진 값이 비싼 작가로 알려진 독일의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호평 속에 가진 후 그해 11월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를 찍은 대형 사진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60만 달러(약 9억3000만 원)에 팔린 것과 우연히도 같은 해다. 1980년대부터 맨 레이, 마거릿 버크화이트, 신디 셔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 전통적으로 유명한 서구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해외 유명 경매에 올랐지만 60만 달러대까지 가격이 치솟은 것은 구르스키가 처음이었다.

그 뒤 구르스키는 2006년 필립스경매에서 작품 ‘99센트Ⅱ딥디콘’이 248만 달러에 팔려 전후 최고의 사진작품 낙찰가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2007년 리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이 소개됐다.

국내에서 사진작품의 미술시장 진입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가들에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사진을 그림과 같은 미술품으로 인정해 판매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고 미술시장에서 사진의 설 자리가 확보되지 않아 공식적인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 땅 밑으로 물이 흐르듯 봄은 오고 있었다. 세계 미술계의 동향을 살펴왔던 한국 미술계 큰손들이 뉴욕과 유럽 등지를 돌면서 경매에서 사진작품의 가격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국내에서도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서울옥션은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들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호응이 좋을 만한 신구 작가의 작품을 골고루 선별해 경매에 올린 뒤 컬렉터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것이 바로 서울옥션의 ‘사진과 현대미술’ 경매전이었다.

이날 경매 결과를 보면 총 42점의 국내작가 출품작 중 13점이 낙찰돼 낙찰율은 32%. 13점의 낙찰가를 보면 요즘 잘나가는 구본창, 배병우의 작품가격은 100만∼200만 원대에 불과했다. 강운구, 이정진, 박미나만 추정가 정도에서 낙찰됐다. 나머지는 추정가보다 낮은 가격대로 낙찰됐다. 처음 열린 경매치고 나쁘다곤 할 수 없지만 유찰된 작가들로선 처음으로 자기 작품 가격을 객관적으로 돌이켜 보는 계기가 제공된 셈이다.

이후 경매에 사진이 꾸준히 등장했고 가격도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김준, 김도균, 김중만, 이윤진, 임택, 한성필, 최원준, 권두현(무순) 등의 작가들이 나타났다.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의 해외세일이나 파리포토와 같은 해외 사진시장에도 적극 진출했다.

때를 같이하여 한미사진미술관, 갤러리 와(瓦), 김영섭 화랑, 갤러리 룩스, 갤러리 나우 등 사진전문 미술관과 화랑들이 속속 생겨났고, 비로소 사진의 가격이 형성되면서 거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배병우 소나무시리즈 9000만 원 넘어 서기도

그동안 사진작품 가격은 얼마나 올랐을까? 작품 가격은 경매낙찰가가 가장 객관성을 유지하는 만큼 국내의 대표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에서 거래된 작품들의 가격을 기준으로 삼았다.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의 미술은행에 들어가도 작가들로부터 구입한 작품 가격이 나온다. 하지만 이 가격은 미술시장의 거래와 달리 정책적, 미술사적 의의까지 보태진 가격임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국내 사진계에서 가장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은 배병우와 김아타. 배병우의 소나무 시리즈 중 1점이 영국경매에서 유명 영국가수 엘턴 존에게 3000만 원(당시 환율)에 팔리며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인기다.

김아타는 개성이 강한 누드 퍼포먼스 사진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온에어’ 프로젝트 중 미국 뉴욕 거리를 8시간의 노출을 주고 찍은 ‘뉴욕’ 시리즈가 인기작으로 언론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그는 올해 6월에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초대작가에도 선정돼 미국에 이어 본격적으로 유럽에 작품을 선보인다.

2001년 첫 경매와 2008년 경매에 나온 두 사람의 작품 가격대를 비교해 보면 8년 동안 최소 10배 이상 올랐음을 알 수 있다. 2008년은 그 전해 미술시장이 정점을 찍은 뒤 급속히 위축된 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진작품의 가파른 가격 상승세를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단 한점만 있는 회화작품과 달리 사진작품은 작가마다 3∼10번 같은 사진의 에디션을 만들기 때문에 작품당 가격이 미술품보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진을 구입한다면 에디션 넘버와 작가의 사인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배병우, 김아타와 함께 구본창, 민병헌 같은 50대 작가들의 활약에 힘입어 한성필, 이명호, 이원철, 이윤진, 김인숙 같은 30, 40대 작가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이들은 국내에서 활동 중임에도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뒤 국내에 알려졌다. 해외 유학파의 경우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든가 국제적 포토페스티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있다.

○중국, 각종 비엔날레 개최… 세계시장 도약 꿈꿔

한국 사진의 국제적 위상은 일본 중국보다 높지 않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사진이 도입된 일본은 긴 역사에 걸맞게 우에다쇼지 , 스키모도 히로시, 호소에 에이코 등 이름 있는 작가들을 배출했다. 세계적으로 출중한 인물은 없지만 지명도 있는 작가의 폭은 넓다. 중국은 신예 리웨이, 요타오 같은 강렬한 메이킹포토 스타일의 사진으로 국력을 배경 삼아 이미 세계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에는 각종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포토페스티벌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무서운 기세로 세계시장을 흔들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작가들이 국제화에 성공할 경우 사진작품의 가격은 더 오를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특히 세계 미술시장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높아가는 만큼 이번 경제위기가 지나면 또다시 낙관적인 전망이 사진시장을 달굴 것으로 보고 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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