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경영하는 산악인’ 동진레저 강태선 대표

  • 입력 2009년 3월 6일 02시 59분


“제일 좋은 산이요? 집 근처 산이죠”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로 유명한 동진레저의 강태선 대표는 ‘산을 타는 경영인’, 아니 ‘경영을 하는 산악인’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1973년 서울 종로구 종로5가에 국내 최초 국산 등산장비 전문점 ‘동진산악’을 열어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엄홍길 대장을 발굴하고, 대한산악연맹 부회장을 지내는 등 35년간 ‘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산악회를 조직해 국내 주요 산을 수없이 오르내린 것은 물론이고 에베레스트(해발 8848m), 안나푸르나(8091m), 아비가민(7355m), 엘부르즈(5642m), 몽블랑(4807m), 휘트니봉(4417m) 등 세계 유명 고산(高山)을 대장 혹은 단장 자격으로 직접 올랐다. 그런 그가 지난달 10년간 맡아온 서울시산악연맹 회장직에서 물러나 경영인으로 돌아왔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동진레저 본사에서 강 대표를 만나 그의 삶, 그의 산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최초 등산용품전문점 개설

산악회 만들어 엄홍길 대장 발굴

히말라야엔 3번 정도는 가봐야

안나푸르나 초보자에 추천할만

○ 모든 답은 ‘산’에 있다

강 대표의 올해 나이는 만 60세. 그러나 직접 만나본 그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얼굴과 머리에 윤기가 흘렀다. 눈은 빛났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온몸에서 건강한 기운이 뿜어 나오는 그야말로 ‘산 사나이’ 같은 모습이었다.

“산은 종합운동이에요. 산 같이 좋은 게 없습니다. 몸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사고방식도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불가능은 없다’란 도전 정신을 키울 수 있거든요.”

그는 주말마다 반드시 산에 간다. 아무리 적어도 1년에 한 번, 2주 정도는 반드시 히말라야에도 오른다. 그는 “히말라야에 가서 그 공기를 쐬어야 회사도, 나도 1년이 무사하다”고 했다.

“기업은 모험이에요. 탐험가나 기업가는 일맥상통하는 게 많죠. 등반이나 (경영)개척 모두 없는 길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가 산을 탈 수밖에 없는 거예요. 허허.”

강 대표는 개인적으로나, 가장으로서나, 경영인으로서나 삶에 고민이 생기면 “무조건 산에 가고 산에 가면 반드시 답을 얻어 돌아온다”고 했다.

“산에 올라가서 길을 잃으면 가만히 앉아서 지형지물을 관찰합니다. 왼쪽, 오른쪽 계곡의 모양새나 그림자, 해의 방향을 꼼꼼히 살펴봐요. 그러면 답이 나옵니다. 그걸 내 삶에, 경영에 접목해 봐요. 그럼 거기서 또 아주 확실한 답을 얻습니다.”

그는 산에 가면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는 말로 산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산이 자신의 ‘마음의 고향’이라고도 했다.

○ 그때 그 시절, ‘무박산행’의 추억

강 대표는 제주 태생이다. 한라산은 어릴 적 그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중학교 때부터 1박 2일을 걸어서 산에 올라갔다 오고 그랬죠. 그때는 장비나 이런 게 있나요. 그냥 돌 밑에 적당히 비벼서 자고 그랬어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돈을 벌러 올라온 서울에서 그는 등산용품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은 쉽지 않았다. 그가 직접 만든 ‘등산용 배낭’에 관심을 갖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몇 개 판 대금도 부도나 사기로 떼이기 일쑤였다. 결국 사업은 2년 만에 망했다.

“그야말로 ‘동서남북’이 캄캄합디다. 그때가 막 신혼이었는데, 알고 지내던 선배 하나가 ‘강 군, (결혼) 피로연을 하시게’ 하더군요. 축의금을 받고 남는 돈을 재기 자금 삼으라는 거였죠. 그렇게 생긴 42만 원을 종잣돈 삼아 다시 가방을 만들 원단을 샀어요.”

견딘 자에게 기회는 찾아왔다. 1977년 산악인 고상돈 씨의 에베레스트 정복으로 1979년부터 국내 대학에 산악동아리 붐이 일면서 사업은 ‘신나게’ 번창했다.

‘12·12 쿠데타’로 계엄령과 입산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다시 사업이 곤두박질치기도 했지만 골짜기가 있으면 봉우리도 있는 법. 통행금지가 해제되자 ‘무박(무박) 산행’이 유행했고, 사업은 다시 날아올랐다.

“그땐 말이죠, 참 재밌었어요. 토요일 오후 10시에 동대문에 딱 버스를 대면 스커트에 힐을 신고 핸드백을 든 아가씨들까지 산에 가겠다고 모입니다. 밤 12시에 출발해서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산을 타는데 그 복장이 되겠어요. 그럼 버스 뒤에 커튼 치고 우리 매장에 있던 등산화랑 등산복을 입혀서 출발하는 거죠. 올라가면서 무릎이 다 까지고 그래도 새벽 3시에 산속에서 끓여먹는 라면 맛은 정말 기가 막혀요.”

○ 삶도, 경영도, ‘산’과 같이

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산악인 엄홍길 대장을 ‘홍길이’라고 불렀다. 그와 엄 대장은 그만큼 막역한 사이다. ‘소년 엄홍길’을 ‘엄홍길 대장’으로 키워낸 사람이 강 대표이기 때문이다.

“홍길이 부모님이 빈대떡 막걸리를 파는 대폿집을 하셨어요. 경기 의정부시의 원도봉산에 원도봉 골짜기라고 있는데 거길 쭉 올라가면 젤 마지막에 있는 가게가 홍길이네 집이에요.”

그는 산을 오르내리는 길에 들렀던 그 집에서 ‘고3 학생 엄홍길’을 만났다. 그가 꾸린 산악회에 입회한 학생 엄홍길은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산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평생을 산과 함께 살아온 그.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산은 어디일까.

강 대표는 불쑥 “자기 집과 가까운 산이 제일 좋은 산”이라고 말했다. 가까이 두고 자주 오를 수 있는 산을 다니라는 얘기였다.

외국 산은 어떨까.

“히말라야는 세 번 정도는 가는 게 좋아요. 체험할 수 있는 산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거든요. 파키스탄의 히말라야는 매섭고 날카로워요. 고집스럽죠. 티베트에서 올라가는 히말라야에는 할머니 같은 푸근함이 있어요. 불교문화도 깊숙이 이해할 수 있지요. 반면에 네팔 쪽에서 오르는 히말라야는 시누이 같다고 할까. 높진 않아도 삐죽삐죽한 게 한마디를 해도 쉽지 않은 시누이를 닮았죠.”

그는 처음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2주 일정으로 네팔에서 오를 수 있는 안나푸르나를 추천했다.

“이 산은 북한산이나 도봉산에 다닐 정도의 체력이면 갈 수 있지요. 사람이 무척 많은 코스예요. 돈만 내면 닭볶음탕부터 소주까지 한국 음식도 다 먹을 수 있고요(웃음).”

하지만 높은 산에 올랐을 때 산소부족으로 생기는 두통, 구토 등 ‘고산증’은 피해갈 수 없다.

“누구든지 고산증은 옵니다. 안 오면 이상한 거예요.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적응하느냐입니다. ‘빨리빨리’를 ‘천천히’로 바꿔 시간을 갖고 기다리면 누구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산도, 경영도, 인생도, 결국엔 다 그런 것 아닐까요.”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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