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씀 그대로, 사랑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떠나는 길을 막지 못하더라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2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김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끝난 뒤 운구 차량이 성당을 빠져나가는 길에서 두손 모아 기도하고 흰 미사포를 흔드는 시민들. 모두 추기경의 가르침인 사랑을 되새기는 모습이다. 변영욱 기자

金추기경 장례식, 명동성당 1만여명 눈물의 배웅

2평이 채 안 되는 좁은 공간. 흙이 한 삽 한 삽, 경건하게 뿌려졌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 김수환 추기경의 삼나무 관 위에는 문장(紋章) 속에 있는 사목 표어가 또렷하게 보였다. 묘 옆의 나무에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문구와 온화한 미소의 김 추기경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경기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직자묘역에서 거행된 김 추기경의 하관예절은 20일 오후 1시 반에 시작해 35분 만에 끝났다. 평생 낮은 곳으로 헌신해오며 사랑을 실천해온 김 추기경은 그렇게 미소 지으며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관 위에 흙이 쌓일수록 신자들의 연도(煉禱·위령기도) 소리가 커졌고 신자들뿐 아니라 김 추기경의 비서신부였던 백성호 신부 등 성직자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하관예절에 참석한 2000여 명의 성직자와 신자가 부르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1장 25절) 구절이 나지막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미사가 열렸다. 전날 영하 1.8도였던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이날 영하 6도까지 떨어졌지만 명동성당에는 새벽부터 시민들이 몰렸다. 시민들은 김 추기경의 떠남을 아직 실감하기 어렵다며 한결같이 “너무나 큰 어른을 잃어 벙벙하다. 추기경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을 대리해 주례하는 장례미사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라는 성가를 시작으로 열렸다.

병세 악화로 고통받는 김 추기경이 그만 쉬게(돌아가시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고백한 강우일 주교와 “더는 육안으로 추기경님을 뵐 수 없게 된 것은 큰 슬픔”이라고 한 한홍순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의 조사(弔辭)가 이어지자 신자들은 “주님, 추기경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정 추기경은 “김 추기경님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빛과 희망이 되었고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다”며 “(하지만 이제) 믿는 이에게 죽음이란 희망의 문턱이요 시작이라는 믿음으로 김 추기경님을 하느님의 손에 맡겨드리자”고 했다.

이날 성당 안에 들어가지 못한 9000여 명은 경내 곳곳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사를 지켜봤다. 김 추기경을 떠나보내는 조사가 낭독될 때마다 신자들은 눈시울을 붉히거나 나지막이 기도했다.

장례미사가 끝난 뒤 김 추기경의 관은 8명의 젊은 사제에 의해 운구차로 옮겨져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직자묘역으로 향했다. 명동성당은 33번의 종소리를 울리며 추기경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장례미사에 참석한 뒤 “추기경은 너무나 많은 것을 남기고 가셨다”며 “추기경이 평생 베풀고 간 사랑을 이제 남은 사람들이 세상에 돌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6시 12분 선종한 추기경의 명동성당 빈소에는 공식 조문을 마감한 19일 밤 12시까지 38만7420명이 조문했다고 장례위원회 측이 밝혔다. 김 추기경이 본당 신부로 활동했던 안동성당 등 전국적으로는 100여만 명이 조문한 것으로 추산된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