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우리시대 연극 ‘말빨’로 살죠”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삼도봉미스토리’ 연출 고선웅 씨

서울 대학로의 소문난 ‘이야기꾼’ 고선웅(41·사진). 그의 이름은 약방의 감초처럼 연극 포스터 등에 자주 등장한다. 지난해 말 시작된 연극 ‘마리화나’에 이어 ‘강철왕’(15일까지), 10일 개막한 ‘삼도봉미스토리’는 그가 희곡을 각색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10년 전 작품인 ‘락희맨 쇼’와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초연작 ‘들소의 달’은 하반기에 공연될 예정이다. 여기에 지난해 11월부터 전국을 돌고 있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각색과 노랫말도 그의 작품이다.

8일 서울 동숭아트센터에서 ‘삼도봉…’의 막바지 무대를 점검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이 작품은 경상북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등 삼도(三道)가 만나는 삼도봉(민주지산 봉우리)을 배경으로 미곡창고에서 벌어진 살인방화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물이다.

‘농촌이 등장하지 않는 농촌 미스터리’를 내세운 연극답게 무대는 현대적이다. 한쪽 벽면에 거울이 있는 취조실에서 모든 게 재현되고 쌀은 한 톨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작품의 매력은 ‘화려한 말빨’에 있다. 말 속에 담긴 메시지보다 말에 담긴 리듬을 내세우는 그의 대사는 호흡이 가쁜 만큼 에너지가 넘친다. ‘강철왕’에선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까지 등장하더니 ‘삼도봉…’에서는 강원 경상 전라 충청 등 4개 지역 사투리가 뒤섞인다.

그의 작품에서 말이 많아진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배고픈 극단 생활을 해 본 만큼 “배우들에게 밥과 술보다 더 필요한 것은 대사 한 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말이 많은 것이 주제를 훼손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사나 상황의 재현만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연극은 구식 아닙니까? 연극의 어법도 바뀌어야죠. 셰익스피어, 체호프 이런 얘기 하지 마세요. 아무리 좋은 텍스트라도 시대에 걸맞아야 미덕이죠. 제 연극? 공허합니다. 그러려고 만든 거예요. 제 스타일이 그렇습니다.”

그는 10월 예정된 뮤지컬 ‘남한산성’ 각색 작업에 한창이다. ‘남한산성’은 소설가 김훈 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29세 청년 오달재와 기생 등이 추가됐다. 1년 넘게 병자호란 스터디 모임까지 꾸렸다.

그는 “원작의 언어를 바꾸거나 꾸며서 내 것인 양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삼도봉…’은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10일부터 무기한 공연. 3만 원. 02-766-6007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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