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연예인-기획사 노예계약’ 또 무효 판결

  • 입력 2009년 1월 24일 02시 56분


“앨범 50만장 팔려야 수익금 준다니…”

“전속기간 ‘첫 주연 출연부터 10년’ 족쇄

계약위반 때 엄청난 배상금도 불평등”

‘노예 계약’ 논란이 일고 있는 연예인과 소속 연예기획사 간의 전속계약에 대해 법원의 ‘무효’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내주)는 5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씽’의 전 멤버 김모 씨 등이 “전속계약을 무효로 해 달라”며 소속사인 씽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 씨 등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최소 10년 이상인 전속계약은 훈련 기간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길다”며 “계약 기준점을 처음 음반을 출시한 날짜나 처음 주연을 맡는 작품에 출연한 날짜로 정해 전속계약 기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속계약은 김 씨 등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가로막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익분배 조항을 보면 앨범이 50만 장 이상 판매될 때부터 수익을 나누게 돼 있다”며 “이는 국내 음반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일이고 방송에 손님 또는 가수로 출연하면 수익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연예산업이 초기에 신인을 기르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해도 투자 실패의 위험은 투자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계약을 위반하는 경우 손해배상 금액을 과다하게 정해 놓는 것도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연예계 전속계약 관행에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지나치게 긴 전속기간과 불평등한 이익배분 조항, 연예인이 계약 위반 때 물게 되는 손해배상 금액의 불합리성 등이 노예계약과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연예인 전속계약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1월 가수 ‘메이’가 전속계약을 무효로 해 달라며 소속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문제의 계약은 경제활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06년에는 CF 모델 유민호 씨가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계약 해지 때 과도한 배상을 하도록 한 계약은 불평등해 무효”라며 “기획사에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최근 영화 ‘미인도’로 주목받았던 영화배우 김민선 씨는 2004년 “소속사와 불공정한 전속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고, 2001년에는 인기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이 집단적으로 소속사의 부당한 대우를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기획사 측은 전속계약에 관한 법원 판결에 대해 “연예인과 소속사 간의 전속계약은 불평등한 계약이 아니며 연예인 육성에 드는 시간과 비용, 경쟁사들 간의 소모적인 연예인 영입 경쟁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도 연예 기획사와 연예인 간 불공정 계약 실태에 대한 서면조사에 나서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 10곳에서 수익분배, 전속기간 등과 관련해 연예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을 상당 부분 파악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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