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효 태극기 산실’ 일본배 보존 확인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박영효가 1882년 9월 수신사로 일본에 가면서 태극기를 제작한 현장인 일본 배 메이지마루. 일본 도쿄해양대에 남아 있으나 일본에서는 박영효와의 관련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사진 제공 한철호 교수
박영효가 1882년 9월 수신사로 일본에 가면서 태극기를 제작한 현장인 일본 배 메이지마루. 일본 도쿄해양대에 남아 있으나 일본에서는 박영효와의 관련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사진 제공 한철호 교수
박영효가 1882년 9월 일본에 도착한 직후 해외에서 최초로 국기로서 태극기를 내건 니시무라 여관의 당대(1870년대) 모습. 여관 앞에 대형 깃대가 보이며 박영효가 이 깃대에 태극기를 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영효가 1882년 9월 일본에 도착한 직후 해외에서 최초로 국기로서 태극기를 내건 니시무라 여관의 당대(1870년대) 모습. 여관 앞에 대형 깃대가 보이며 박영효가 이 깃대에 태극기를 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쿄해양대에… 1951년 침몰후 인양 복구

첫 게양했던 여관전경 담긴 동판화도 공개

박영효(1861∼1939)가 1882년 9월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으로 가는 도중 선상에서 태극기를 그린 일본 배 메이지마루(明治丸)호가 도쿄해양대에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박영효가 일본에 도착한 직후 그 태극기를 내걸었던 니시무라(西村) 여관의 전경이 담긴 동판화도 국내 처음 공개됐다.

이 태극기는 1883년 고종이 최초의 국기로 선포한 것이다. 니시무라 여관은 박영효가 처음으로 해외에서 태극기를 국기로 내걸고 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천명한 곳이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4일 “1874∼1875년 니시무라 여관의 모습이 담긴 동판화를 발견했다”며 “박영효가 태극기를 내건 니시무라 여관의 당대 모습을 확인한 것으로, 여관 앞 중앙에 대형 깃대가 있어 박영효가 태극기를 단 깃대의 위치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또 “메이지마루호는 일본 도쿄해양대에 보존돼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박영효는 메이지마루 선상에서 영국인 선장 제임스와 의논해 8괘를 간략화한 4괘의 태극기를 제작했다. 일본의 시찰선으로 사용된 메이지마루는 일제 패망 이후 연합군의 병영으로 사용됐으며 1951년 침몰됐다가 나중에 인양 복구됐다. 1978년 일본 중요 문화재로 지정됐으나 일본에서 박영효나 태극기와의 관련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니시무라 여관은 1900년대 초 대대적인 수리를 거쳤으나 1945년 폭격으로 사라졌다. 동판화에는 당시 여관 앞 마당에 대형 깃대가 있으며 이 깃대에 여관 이름이 적힌 깃발이 걸려 있다. 한 교수는 박영효가 수신사로 갔을 때 기록한 일기인 ‘사화기략(使和記略)’에 쓴 내용을 토대로 이 깃대에 태극기를 걸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영효는 사화기략에서 “무릇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는 사람이 예의상 국기가 없을 수 없는데 … 새로 만든 국기를 묵고 있는 누각의 깃대에 달았다”고 기록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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