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가족…착한 가면,낯선 얼굴

  • 입력 2009년 1월 3일 02시 56분


◇착한가족/서하진 지음/324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풍요롭든 빈약하든 사람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 얼굴로 자기를 위장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안간힘을 쓰며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다들 너무 피곤해 보여요.”

등단한 지 16년을 맞은 중견작가 서하진(48) 씨가 새 소설집 ‘착한가족’(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숨은 모습을 들춰낸다. 이런 탐색은 특히 어떤 관계보다 가깝고 친숙하다고 여겨지는 가족 안에서의 관계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곳엔 평생 가족을 보듬으며 묵묵히 살다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가, 각 상황에 맞게 새롭게 변신하는 억척스러운 엄마가, 은밀한 사생활을 숨겨둔 아버지가 있다.

“제 나이 무렵의 사람들을 보면 제일 힘들 때인 것 같다. 아이들은 대학 보내고, 독립시키려면 한참인 데다 남편들은 직장에서 위태로워지고, 몸이 아픈 가족도 생기고 이런저런 사정들이 많이 생긴다”는 그는 “절실하게 부닥치는 문제가 가족이 되다 보니 소설에서도 다루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능수능란하게 다른 모습을 꾸며낸다기보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다른 얼굴을 한다. 따뜻하고 자상한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아빠의 외도를 딸이 미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아빠의 사생활’은 가족에 가려졌던 사람들의 진면목이 드러나지만 이들이 낯섦에 허둥대는 광경은 측은함마저 불러일으킨다.

‘모두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도 마찬가지.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한의사 M에게 악성 종양이 발견된 뒤 가족과 지인들을 중심으로 그를 대하는 관계나 방식에 일대 변화가 생긴다. 그도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본다. 하지만 수술 후 종양이 양성으로 판명되자 M은 이질적으로 변한 관계망 속에서 멍해지고 만다.

작가는 “우리 세대는 ‘질서는 생명이다’ 같은 급훈처럼 정해진 역할 모델에 따라 살아야 했다”며 “이제는 ‘10분 덜 자면 아파트 평수가 달라진다’라는 급훈이 나올 만큼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직장이나 가정에서 요구되는 역할의 고정관념에 지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표제작 ‘착한가족’에서는 ‘역할의 위장술’이 요구되는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은 낮에는 폭력사건에 휘말린 아들을 위해 가녀린 엄마로, 오후에는 회사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게 된 남편을 위해 당찬 아내로 변화무쌍하게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엄마 앞에서는 투정쟁이 딸이 된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그에게 노모가 죽을 떠먹이는 장면에서는 사회적 자아로 감내해야 할 역할의 고단함과 가족 간의 유대감이 교차된다.

다양한 역할 모델을 감당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오는 압박감은 ‘인터뷰’ ‘너는 누구인가’에서처럼 작가의 자의식과도 연결되기도 한다. 작가는 “작가로서의 자의식과 한 가정의 엄마, 아내인 일상적 자아 속에서 늘 충돌을 느낀다”며 “하지만 그때그때 다른 얼굴을 가지면서 일상적인 것, 사소한 것들에 발목을 잡히는 것 자체가 삶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시대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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