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대 녹음 스튜디오가 해물 레스토랑 된 사연은

  • 입력 2008년 12월 23일 17시 59분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했던 KOCCA 스튜디오. [사진=문화컨텐츠 진흥원 홈페이지]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했던 KOCCA 스튜디오. [사진=문화컨텐츠 진흥원 홈페이지]
최고 수준의 음악장비를 보유한 KOCCA 녹음실은 음반 제작을 원하는 순수 음악가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장소로 자리매김해왔다. [사진=이어맥스 이한철 대표 블로그]
최고 수준의 음악장비를 보유한 KOCCA 녹음실은 음반 제작을 원하는 순수 음악가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장소로 자리매김해왔다. [사진=이어맥스 이한철 대표 블로그]
KOCCA 목동 스튜디오가 있던 양천구 목5동 부영그린타운 지하공간은 현재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KOCCA 목동 스튜디오가 있던 양천구 목5동 부영그린타운 지하공간은 현재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진짜 KOCCA(코카) 녹음실이 없어진 건가요?"

지난 여름 클래식 음악인과 녹음엔지니어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는 단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컨텐츠진흥원(KOCCA·코카)이 운영해온 목동 스튜디오 해체 소식이었다. 2001년 세워진 이 스튜디오는 국내 최고, 최대의 녹음 시설을 갖추고 국내 음악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 서비스를 해왔기 때문에 높은 인기를 누려왔다.

총 면적 4000여㎡ (약 1300평)의 규모에 들어선 2개의 대형 스튜디오는 그 규모 때문에 스튜디오 녹음을 원하는 순수 클래식 음악인들과 합창단 사이에서 일종의 성지(聖地)로 통했다. 아마추어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명가수들의 상업앨범은 물론 세계적인 음악가인 조수미, 유키 구라모토의 한국 방문 시 단골 녹음실로 애용되어 왔다.

해체 이후 들려온 뉴스는 막연하게 '이전 설치'를 기대한 음악인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9월 진행된 장미매각이 2차례 유찰 끝에 무산됐다는 내용이었다. 2001년 매입당시 가격 약 25억원의 최고급 녹음장비가 1억9000만원에도 낙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문화컨텐츠진흥원은 이 장비들을 해체하여 남양주 종합영상촬영소와 제주 영상미디어센터에 무상으로 위탁하기로 결정했다.

◆ 목동 스튜디오 장비

1. 세계정상급 SSL9064J 64Frame Audio Mixing Console (취득가액 : 7억5500만원)
2. Studer D827MK II MCH 48Track DASH Format Multi Recorde (취득가액 : 2억원)
3. Euphonix System5 Digital Mixng Console (취득가액 : 5억5000만원)
4. 스타인웨이 피아노 및 야마하 피아노 (취득가액 : 6800만원)
  기타 방송/영상 및 악기 약 25억원, 스튜디오 건설비 포함 총 43억원

스튜디오가 있던 양천구 목5동 부영그린타운 2차 지하공간에는 지난달 말 양천구 최대규모의 해산물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참아왔던 음악인들의 분노는 이 대목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최고 수준의 녹음실을 부수고 들어선 것이 해산물 레스토랑이냐"면서 "정부의 문화적 소양을 알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행정 사례가 될 것이다"는 비난이 줄을 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음악인은 "몇몇 음악인들이 경매 이후에 재인수를 시도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냉정하게 거절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43억짜리 최고 수준의 녹음 스튜디오가 고철덩이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스튜디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상암동 문화컨텐츠 컴플렉스 신축 비용으로 40억 보증금 빼

문화컨텐츠 진흥원이 밝히는 스튜디오 해체 이유는 간단하다.

태생적인 구조가 수익성을 맞추지 못했다는 것. 2001년 문화컨텐츠제작진흥센터 소속으로 출범한 스튜디오는 건물주인 부영 측과 임대차 계약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스튜디오 제작비 총 43억원에 임대보증금만 40억원에 이르렀고 월 임대료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3시간 스튜디오 사용료 40만원(후에 50만원)으로는 임대료를 내기에도 벅찼다는 얘기다.

문화컨텐츠진흥원 경영지원국 임규복 과장은 "2006년 5년 계약이 만료된 이후 2년 추가계약을 통해 총 7년을 최선을 다해 운영해왔다"면서 "올해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문화컨텐츠센터 건물 신축 비용으로 돈이 필요해 꼭 40억원을 빼야 했다"고 덧붙였다.

새 건물 입주를 위해 국내 하나뿐인 공영 스튜디오를 희생했다는 얘기다. 혹시 스튜디오를 상암동으로 이전하거나 새로운 사업 운영자를 찾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 했을까?

이에 대해 임 과장은 "시설 이전 재설치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새로운 사업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40억원의 보증금을 부담할만한 사업자가 없어 매각 절차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보석을 잃어버렸다" vs "아쉬워할 것 하나 없다"

음악 및 영상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음향분야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받는 추세다. 전 세계적으로 녹음 기술은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인프라에 속한다. 때문에 할리우드나 대부분의 문화 선진국에서는 녹음 분야 기술자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를 위해 목동의 공영 스튜디오를 만들었지만 단 7년 만에 허물어졌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의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는 것.

㈜삼익악기와 함께 서울 서초동에 벡스타인 음악홀을 운영하는 이한철(40) 이어맥스 대표는 "KOCCA 스튜디오는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면서 "호주와 일본 등 해외 정부기관이 운영하는 퍼블릭 스튜디오는 자국 문화산업의 튼실한 기초가 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벤치마킹하지 못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진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목동 스튜디오를 초기부터 애용했다는 이 대표는 공영 스튜디오의 하드웨어가 최고 수준을 달렸지만 이를 단순하게 위탁 운영해온 점을 문화관광부의 대표적인 오류로 지적한다.

"음악 산업이 위축되는 시점에 정부가 최고급 시설을 값싸게 제공한 점은 좋았다. 그러나 프로그램 없이 위탁운영을 통해 임대료만 뽑아내려 했기 때문에 여타 상업 스튜디오와 단순 경쟁한 측면이 있었다. 오히려 설립 초기 음악인협회나 저작권 협회와 공동으로 운영하여 장기적 생존의 길을 모색하거나 하드웨어만큼 콘텐츠를 채우려고 노력했다면 제 가치를 더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아쉽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최고급 하드웨어만 갖췄을 뿐 저가 가격정책으로 한국 음악 산업에 해를 끼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스튜디오협회 이태경 전 회장은 "애당초 태어나선 안 될 (과잉투자) 시설이었다"면서 "어차피 컴퓨터 음악과 홈 스튜디오가 대세가 된 시점에 대형 스튜디오의 존재 이유는 희미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음악계에서는 목동 스튜디오의 설립, 운영과 해체의 과정이 "하드웨어에만 집중 투자한 DJ정부와 운영시스템 구축에 실패한 노무현 정부, 그리고 산술적 이익만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흥미로운 촌평도 흘러나온다.

확실한 것은 지난 7년간 한국 예술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최고급 녹음 스튜디오가 허공 속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43억 원 어치의 고철덩이만 남긴 채….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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