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망자여… 詩로 토해낸 ‘산 자의 슬픔’…‘옛사람들의 눈물’

  • 입력 2008년 8월 16일 02시 59분


◇ 옛사람들의 눈물/전송열 지음/399쪽·1만4800원·글항아리

조선시대 죽은 자를 애도하며 지은 ‘만시’ 35편의 사연 엮어

절제를 미덕으로 삼아 좀처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조선시대 사대부.

울음을 참아 삭여내는 데 익숙해야 했던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면 가슴에 남은 애통함을 시에 담았다.

조선시대 산 자가 죽은 자를 애도하며 지은 시를 만시(挽詩)라 했다. 당시 사대부가에서 누군가 죽으면 만시를 지어 바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예의였다고 한다.

한국한문학(한시)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진귀한 고서와 간찰(簡札)을 복원 해제하는 작업을 해온 저자는 오래전부터 추려놓은 빼어난 만시 35편을 각각의 사연과 함께 글로 엮었다.

만시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자만시(自挽詩).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삶을 되돌아보는 일종의 회고시다.

인조 때 명문장가 택당(澤堂) 이식은 “살아온 세월이 예순네 해나 되었어도/장부의 한평생 쉴 틈 없이 고달팠네/…이제 저세상 돌아가면 모든 생각 끊어지겠지만/푸른 산은 변함없고 물은 동으로 흐르리라”라는 시를 남기고 20일 뒤 생을 마감했다. 대제학까지 지낸 그가 죽음 직전 바라본 인생은 ‘나그네 길’이었던 셈이다.

중종의 신임을 바탕으로 조광조와 함께 개혁을 도모했다가 기묘사화 때 30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한 복재(服齋) 기준은 사약을 앞에 두고 ‘충신의 비장함과 서글픔’을 시로 읊었다.

“해 떨어져 하늘은 칠흑과도 같고/산은 깊어 골짜기가 구름과 같네/천년토록 지키자던 군신의 의는/슬프게도 외로운 무덤뿐이로구나”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애통함이 담긴 시가 곡자시(哭子詩)다.

영조 때 대제학과 판서를 지낸 서당(西堂) 이덕수는 서른 살 아들을 떠나보낸 심정을 ‘죽은 아이의 묘를 돌아보면서(省亡兒墓)’라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내 나이 육십이요, 네 나이 삼십인데/부자간의 깊은 인연이 여기서 끝이라니/아직도 산사에 책 읽으러 간 것 같은데/한 줌 흙이 어째서 네 눈 속에 있단 말이냐”

허난설헌이 두 남매를 차례로 잃고 쓴 시에는 통곡이 묻어난다.

“…/너희 남매의 혼은/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겠지/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랄까/…”

허난설헌과 그의 동생 허균에게 시를 가르친 스승으로 알려진 조선 중기의 천재 시인 손곡(蓀谷) 이달은 아내를 잃고 시를 남겼다.

그의 아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부의 애틋함은 시를 통해 전해진다.

“화장함엔 거미줄, 거울엔 먼지 일고/닫힌 문에 복사꽃 핀 적막한 봄이라/예전처럼 다락에 밝은 달은 떴건마는/그 누가 있어 저 주렴 거두어줄까”

연암(燕巖) 박지원은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을 그리워하며’라는 시를 남겼다. “우리 형의 얼굴은 누구를 닮았던가요/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형을 보곤 했지요/오늘 형이 그리운데 어디 가서 볼까 하다/옷매무새 바로 하고는 시냇물에 비춰봅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진실해진다는 말처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바치는 만시에는 미사여구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담겨 있다.

“만시는 자신의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이 농축된 한없는 슬픔을 느껴보라고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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