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금기깨려는 저항” “주체적인 글 써야”

  • 입력 2008년 5월 13일 02시 59분


1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교보타워에서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 씨 (왼쪽)와 소설가 황석영 씨가 경계를 뛰어넘는 문학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교보타워에서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 씨 (왼쪽)와 소설가 황석영 씨가 경계를 뛰어넘는 문학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벨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소설가 황석영 대담

“모든 종류의 선입견이나 관점, 문학적 규칙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입니다. 작가로서 가장 즐거울 때는 이런 내적인 경계를 찾아서 깨는 것이죠.”(오르한 파무크)

“태어날 때부터 ‘분단’같이 눈에 보이는 경계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내면화된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더 절실했습니다. 젊은 작가들이 서양 소설작법에서 벗어나 자기 방법론을 개발해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황석영)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56) 씨와 소설가 황석영(65) 씨가 만났다.

국제출판협회 서울총회 기조연설자로 내한한 파무크 씨는 12일 오후 4시 서울 서초동 교보문고 강남지점에서 황 씨를 만나 ‘경계와 조화’라는 주제로 문학의 역할, 전통주의와 서구주의의 충돌, 문학의 위기 등에 대해 2시간여 동안 대담을 나눴다. 급변하는 현대사를 가진 두 나라에서 살아온 문학인답게 대담은 금세 동질감을 이뤘다.

파무크 씨는 “현대적인 서구 방식으로 전통적인 이야기를 쓰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검은 책’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면서 “이제 지역이나 전통 등 이분법적 사고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글을 쓴다”고 말했다.

황 씨도 파무크 씨의 의견에 공감했다. 그는 “파무크 씨의 ‘내 이름은 빨강’을 보면 물감까지 한마디씩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국 민담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우리도 서구 문학이 일방적으로 던져준 형식과 화법, 규칙 등을 깨고 자기의 목소리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의 위기에 대해 두 사람은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인류의 욕망이 없어지지 않는 한 문학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파무크 씨는 “상업주의가 문학을 갉아먹은 나라가 많지만 한국은 순수문학을 잘 지켜 왔다. 여러분이 훌륭한 서적문화를 이룩해 왔다”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끌어냈다.

한편 그는 대담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기자간담회 및 독자사인회를 갖고 한국 독자와 만났다. 그는 “6년 동안 집필해온 600여 쪽의 장편소설 ‘순수 박물관’을 방한 전 탈고해 더할 수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며 감회를 밝혔다.

방한에 맞춰 9일 출간된 자서전 ‘이스탄불’에 대한 소감도 잊지 않았다. 2005년 해외의 한 언론에서 오스만튀르크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비판한 후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테러 위협에 시달려온 것에 대해 “집 앞에 경찰이 더 늘었다”며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글쓰기가 하나의 정치적 행동이라기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금기시되는 것에 대한 저항의 일환이었다”면서 “생각하는 것을 쓰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부여받은 가장 신성한 의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영상취재: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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