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핏빛 비극 완성시킨 진흙과 징소리…‘레이디 맥베스’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1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해석해 극적 효과와 긴장감을 극대화한 연극 ‘레이디 맥베스’. 사진 제공 예술의 전당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해석해 극적 효과와 긴장감을 극대화한 연극 ‘레이디 맥베스’. 사진 제공 예술의 전당
“징징징징∼.”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낮게 깔리는 징소리, “까르르” 울려 퍼지는 여성의 웃음소리가 음산함을 더한다. 배우는 진흙으로 만든 덩컨왕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쳐 부순다.

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레이디 맥베스’는 1998년 초연 당시 밀가루 진흙 물 등 오브제(물체)를 활용한 실험적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작품. 2002년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레이디 맥베스’는 여전히 실험적인 연출이 돋보였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해석해 맥베스 대신 레이디 맥베스(맥베스 부인)와 그의 주치의를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정신과 의사가 레이디 맥베스의 기억 속에서 덩컨왕을 살해한 과정을 끄집어내는 이야기를 다뤘다.

서주희(레이디 맥베스) 정동환(주치의) 등 예전 멤버가 다시 뭉쳐 온몸에 밀가루와 물을 뒤집어쓰며 보여 준 연기도 볼만했지만, 이 작품의 묘미는 오브제의 활용에 있었다.

덩컨왕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대신 무대 미술가 이영란이 무대 뒤 배경에 진흙으로 그 장면을 그려 나갔다. 밀가루를 피처럼 흘리며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덩컨왕의 머리(진흙으로 만들었다)는 섬뜩함을 자아냈다.

이번 공연에서 새로 쓰인 박재천의 북과 징 소리는 긴장을 고조시켰고, 김민정이 부르는 정가(正歌)의 맑은 음색은 오히려 살인의 잔인함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냈다.

6년 전과 달리 한태숙의 연출은 객석을 무대로 끌어올렸다. 토월극장의 800석 객석을 포기하고 무대 위에 300석을 만들어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소극장처럼 좁혔다.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손꼽히는 마지막 장면은 이전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토월극장의 원래 객석을 가렸던 막이 오르면서, 무대에서 그곳까지 연결하는 다리가 드러난다. 덩컨왕을 죽인 죄의식 때문에 몸부림치던 레이디 맥베스는 관객들을 뒤에 남겨 둔 채 그 다리를 뚜벅뚜벅 건너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4월 13일까지. 02-580-1300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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