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50년’ 패티 김 “70세…내 목소리는 지금이 절정”

  • 입력 2008년 3월 24일 20시 01분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에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패티 김 씨는 24일 대표곡 ‘초우’를 부른 후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 무대 뒤에는 ‘지금, 나는 온 천리를 신비로운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석양의 노을처럼 가장 아름다운 태양의 모습이고 싶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김경제 기자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에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패티 김 씨는 24일 대표곡 ‘초우’를 부른 후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 무대 뒤에는 ‘지금, 나는 온 천리를 신비로운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석양의 노을처럼 가장 아름다운 태양의 모습이고 싶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김경제 기자
"요즘 내 목소리는 절정, 그야말로 황금기야. 하지만 영원한 건 없으니 한계가 올 거란 것도 알아요. 그땐 모든 걸 단념해야할 용기가 필요하겠죠. 언제 어떻게 무대를 떠나느냐, 그게 내게 마지막 남은 가장 중요한 과제예요."

가수 패티 김(본명 김혜자·70)씨가 다음달부터 8개월간 서울을 비롯해 부산 목포 대전 등 전국 11개 대도시를 돌며 '가수 데뷔 50년 기념 공연'을 시작한다. 제목은 '꿈의 여정 50년 칸타빌레'. 기념 공연을 시작하는 첫 무대인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4월30~5월2일)은 1978년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그가 공연했던 곳.

1959년 미 8군에서 '린다 김'이라는 예명으로 무대에 오른 이후 그는 반 백년을 '노래하듯이(칸타빌레)' 살아왔다.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 씨는 공연 티켓에 들어가는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대 조명부터 음향까지 공연에 관한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는 그는 이날도 티켓 시안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그는 공연 전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대 의상을 입고 난 후에는 절대 의자에 앉지 않고 하이힐은 무대 바로 앞에 놓고 나가기 직전에 신는다.

"내 공연엔 사회자도, 백 댄서도 없어요. 악단과 코러스만 뒤에 있을 뿐 모든 걸 내가 혼자 끌어가는 공연이에요. 그래서 공연을 마치고 나면 밤 12시부터 혼자서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그날 공연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치르며 평가를 내리죠. 그래야만 잠을 잘 수가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그는 1989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진 데뷔 30년 기념 공연과 1999년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 그리고 1967년 베트남 위문 공연을 꼽았다.

"흙먼지 날리는 곳에서 땀 줄줄 흘려가며 장병들 앞에서 노래 불렀죠. 죽을 고비도 넘겼어요. 총성에 헬리콥터가 흔들리는데…. 그 와중에도 '패티김 월남에서 죽다'라는 신문 타이틀이 머리를 스치더라니까요.(웃음)"

이번 공연에서는 그는 '초우' '이별' 등 히트곡을 부른다. 그는 "수만 번 부른 노래를 또 부르려니 싫증나다가도 막상 전주가 시작되면 온 힘을 다해 부르고 싶은 게 내 노래의 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만난 그는 편안한 할머니 같았다. 그는 "도도하고 거만한 이미지는 내가 일부러 의도했던 것"이라며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할 때 무시당하기 싫어 조금이라도 더 키가 커보이게 하이힐도 신고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화려하게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갑을 넘기면서부터 관객에게 편하게 다가가게 됐다고 했다.

무대 인생 50년. 평양 출신의 아버지와 개성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남은 바람은 '평양 단독 공연'이다."김정일 씨께서 '이별'이 애창곡이래요. 그 분 앞에서 '이별'을 한번 불러야겠는데…." 02-518-8586

염희진 기자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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