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화가 샌 정, 일민미술관서 Wooden Heart 展

  • 입력 2008년 3월 18일 02시 58분


문학적 감성이 느껴지는 샌 정의 ‘first chapter’(240×200cm·2006년).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문학적 감성이 느껴지는 샌 정의 ‘first chapter’(240×200cm·2006년). 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유화인데도 화면은 수채화처럼 한없이 투명해 보인다. 연보라와 파랑, 분홍 등 물감의 농담을 살려 채색된 여인들의 눈 코 입은 흐릿하거나 아예 지워져 표정을 알기 힘들다. 낭만적이거나 애잔하거나, 보는 이의 마음 풍향계에 따라 그림 속 여인들에 대한 느낌도 달라질 것만 같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재독(在獨) 화가 샌 정(45)의 ‘Wooden Heart’전에서 만나는 그림들이다. 이 전시에서 그는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사적인 일상과 사물, 풍경 등을 새로운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업을 보여준다. 온갖 신기한 매체와 실험이 유행하는 와중에도 그림이 좋아 오직 그림에만 집중하는 작가다.

“캔버스는 내가 이해하고 생각하는 대상들을 표현하는 삶의 방식이죠. 한국 작가들이 범우주적 소재나 인생 등 무거운 것에 대한 관심이 크다면 나는 작은 소재에서 미학적 관심을 찾는 편입니다. 전시 제목 ‘우든 하트’는 준비 없이 어느 곳에선가 우리가 우연히 만나는 성숙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의 본명은 정승. 한국 미술사의 주역으로 성장한 최정화 이불 고낙범 등 홍익대 출신 동료들과 1980년대 후반 ‘뮤지엄’전에 참여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잠시 그림과 멀어졌다. 1995년 독일로 건너가면서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했고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와 런던의 MA파인아트 첼시 칼리지 등에서 공부했다.

“재현이 아니라 재창조가 내 관심사입니다. 평소에 사진을 많이 찍어놓는데 그 사진들이 내 무의식의 심상을 거쳐 그림으로 탄생합니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화가의 삶이 투영된 것일까. 그는 “멜랑콜리하면서도 로맨틱한 감성이 내 미학의 한 부분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일상의 한 순간이든 상상 속 이미지든 그의 작업에는 섬세한 시적 감성이 배어 있다. 그래서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전시는 4월 20일까지(월요일 휴관). 02-2020-2055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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