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사회적 소수자 배척한다”

  • 입력 2008년 1월 2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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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伊‘소외의 철학자’ 저서들 잇단 번역

《프랑스의 자크 랑시에르(68),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감벤(66).

올해 국내 철학계에 이 두 철학자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두 학자의 책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고 초청강연회가 열리는 등 집중 소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두 학자는 2000년대 들어 서구 사상계에서 자리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랑시에르는 자크 데리다와 질 들뢰즈를 넘어, 아감벤은 미셸 푸코를 넘어 ‘새로운 사유’를 구축해 가고 있는 학자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세계 주요 학술 행사의 초청 1순위를 다투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들의 바람은 이미 일어난 상황.

원서로 두 철학자를 접한 사람들이 블로그를 통해 이들의 철학을 알려왔으며 “이 같은 학자들이 왜 여태껏 소개되지 않고 있는가”라며 번역서 출간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랑시에르는 이달 초 저서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가 번역 출간되면서 한국 독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의 실체와 의미를 조명한 책이다. 이어 그의 대표작 ‘미학의 정치’가 ‘감성의 분할-미학과 정치’(도서출판 b)라는 제목으로 다음 주 출간된다. ‘정치의 가장자리에서’(길), ‘불화’(〃), ‘무지의 스승’(궁리) 등도 현재 번역 중이다. 랑시에르는 올해 말경 한국을 찾아 강연회를 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감벤의 철학은 2월 초 국내에 본격 소개된다. 새물결 출판사는 대표작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5권 연작 출간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권을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부제로 2월 초 발간할 예정이다. 또 다른 대표작 ‘열림: 인간과 동물’, ‘남겨진 시간’ 등도 번역 중이다.

랑시에르의 사상적 특징은 어떤 학문적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 그는 좌파 철학자 루이 알튀세의 제자였지만 1974년 ‘알튀세의 교훈’이라는 비판서를 통해 사상적 결별을 선언한 뒤 철학 사회학 역사학 미학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감성의 분할-미학과 정치’를 번역한 오윤성 씨는 “선배 철학자들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 때문에 ‘반목의 철학자’로 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랑시에르는 ‘평등’이라는 개념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타자(他者)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현대 사회에는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애초에 차단된 이들이 있는데 민주주의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평등을 주장해 왔다”고 지적한다. 인도의 수드라(카스트제도의 최하위 계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비롯해 일본의 최하층민인 부라쿠민(部落民) 등이 이에 해당한다. 랑시에르는 철학마저도 소외된 이들을 외면해 왔다고 비판한다.

아감벤도 배제되고 소외당한 이들을 주목한다. 대표작 ‘호모 사케르’의 제목은 ‘벌거벗은 생명’으로도 해석되며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인간을 의미한다. 여기에 아감벤은 ‘예외 상황’이라는 개념을 덧붙여 권력이 유발하는 소외 문제를 지적한다. 위기가 닥치면 정부를 비롯한 권력자는 ‘예외 상황’임을 들어 시민들의 권리를 축소한다는 것이다. 나치의 지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사회철학자인 이들은 학문적 사상적 특징 외에도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랑시에르는 2007년 프랑스 대선 때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가 “랑시에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었다”고 말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아감벤도 미국의 강연 요청이 잇따르고 있지만 지문 등 생체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미국의 입국 제도가 있는 한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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