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문화 쟁점]<4>미술계

  • 입력 2008년 1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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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빨래터’가 45억2000만 원에 낙찰되는 순간. 이 작품은 국내 경매 최고가 신기록을 세우며 2007년 미술시장 호황을 이끌었다.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빨래터’가 45억2000만 원에 낙찰되는 순간. 이 작품은 국내 경매 최고가 신기록을 세우며 2007년 미술시장 호황을 이끌었다.
2008년 미술계는 ‘시장의 빈익빈 부익부’ 문제와 ‘시장의 불안정성’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대표적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의 2007년 경매 낙찰총액은 963억1950만 원. 2006년의 270억2310만 원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K옥션의 낙찰총액도 2006년 274억 원에서 2007년에는 678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미술 시장의 급성장은 한편으로는 작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했다. 일부 인기 작가에게만 수요가 몰리면서 작가들 사이의 양극화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해 말 미술 시장이 한풀 꺾이고 거래가 줄어들자, 올해 시장 전망을 둘러싸고 “냉각기에 들어섰다” “거품이 빠짐으로써 안정적인 미술 시장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 거래되는 작가 1000명 선 돼야

이른바 ‘돈이 되는’ 상업미술에만 관심이 쏠리면서 순수미술이 위축되고 있으며 잘 팔리는 작품의 경향을 뒤따라 그리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보다 작품을 거래하는 아트 딜러가 더 각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모두 미술품에 대한 ‘묻지 마’ 투자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미술 시장의 불균형 현상이다.

최근에는 “꽃 그림이 잘 팔리니까 꽃만 그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처럼 심각한 편중 현상은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미술 시장의 토대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양화가 고선경 씨는 “소수의 작가에게만 지나치게 돈이 몰려 다수의 작가는 소외를 느끼고 있다”며 “서양에서는 실험적인 작품도 잘 팔리는데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미술 시장에 대한 작가들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작가들이 미술 시장에 관심을 두는 이들을 위해, 더 다양한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대학에서 미술 유통과 시장에 대한 강좌를 개설해 작가들이 시장에 적극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미술평론가인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지금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가가 100∼200명이지만 작가들이 시장 시스템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출해 1000명 정도로 늘어나면 양극화와 편중 현상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불안한 시장

올해 미술 시장은 지난해처럼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반기 이후 시장이 주춤거린 데다 연말 ‘삼성 비자금 미술품 구매 의혹’이 터지면서 ‘큰손’들이 물러났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갤러리 대표는 “거품이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얼어붙었다”고 걱정했다.

최 교수는 ‘상반기 고전, 하반기 회복’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최근 블루칩 작품들의 가격 하락 소문이 나면서 팔자로 돌아서는 분위기”라면서 “부동산에 대한 기대 심리 때문에 돈이 부동산으로 빠져 나갈 가능성이 있어 상반기는 특히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런데도 서양화가 이우환 씨나 사진작가 배병우 씨처럼 외국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거래되는 블루칩 작가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난해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했던 국내 작가들로, 이들의 고가 작품은 고전할 것 같다.

미술계에서는 ‘단기간 급등과 추락’이라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억대의 고가 작품이 아니라 중저가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하며, 이들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실질적인 컬렉터 층을 시장에 진입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 교수는 “표준가격 제도를 도입해 시장이 투명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하고 컬렉터들도 단기 매매 투자 심리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섭 미술경영연구소장은 “시장의 성장은 둔화되겠지만 신흥 컬렉터 층의 등장으로 실질적인 미술 소비층은 확대될 것”이라며 “이런 분위기로 가면 하반기 들어 안정세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고미술 시장

3, 4년 전까지 미술 시장의 거래를 주도하던 고미술은 2007년 극심한 불황에 빠졌다. 소규모 고미술 경매업체들의 낙찰률은 20∼40%에 머물렀다. 2007년 서울옥션의 총낙찰액 가운데 한국화와 고미술품은 9.9%에 불과했다. 2006년 33.92%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다.

특히 도자기의 고전이 심각했다. 미술 시장의 주 고객인 40, 50대가 전통 도자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데다 가격이 급등하는 현대미술과 해외 미술로 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중국을 통해 유입된 가짜 도자기들이 이 불황세를 부채질했다.

하지만 2007년 12월 초, 서울옥션의 마지막 메이저 경매에서 고미술이 낙찰률 91%를 기록한 것을 계기로 올해 고미술 시장에 대한 기대가 되살아나고 있다. 고미술 전문 경매회사 동예헌의 안성철 부장은 “지난해에는 현대미술이 블랙홀처럼 자금을 빨아들였지만 올해는 거품이 빠지면서 고미술로 자금이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고미술 시장의 투명성. 그동안 일부 고미술상이 가짜를 거래하면서 시장의 전반적인 불신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한국고미술협회 등이 나서 ‘고미술 보증제’ 같은 제도를 만들어 가짜를 근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미술계의 조언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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