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잘 팔리는 책과 좋은 책 사이

  • 입력 2007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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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들의 수다’ 요즘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이다. 한국에 사는 세계 각국 여성들의 이런저런 수다가 은근히 재밌다. ‘성 상품화’라는 비판도 많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TV 토크쇼 치고 안 그런 걸 못 봤다.

출연 패널 중에 허이령 씨라고 있다. 똑 부러지는 말투로 ‘허 박사’라 불린다. 그가 요즘 인터넷에서 즐겨 찾는 검색어가 ‘베스트셀러’란다. 왜? “일반인이 요즘 무슨 책을 많이 보는지 궁금해서요.”

대만에서 건너온 외국인조차 베스트셀러란 ‘대중이 읽는 책’이다. 때문에 흥행서와 양서는 다르다고 말한다. 실제로 출판관계자나 오피니언리더들이 꼽는 책은 베스트셀러와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직접 비교해 보자. 지난주 본보에서 뽑은 ‘올해의 책’과 교보문고에서 보내 준 ‘2007 연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비교해 봤다. 20위 안에 겹치는 건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7위·학고재)과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19위·창비)뿐이다. 한참 내려가니 64위 ‘생각의 탄생’(에코의 서재), 68위 ‘만들어진 신’(김영사)이 들어 있어 반갑다.

그럼 도대체 무슨 책들이 베스트셀러 톱 순위를 차지했나. 1위는 역시 ‘시크릿’(살림Biz). 한 해 내내 지치지도 않고 팔렸다. 2위는 강펀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열린책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한스미디어), ‘이기는 습관’(쌤앤파커스), ‘해커스 뉴토익 Reading’(해커스어학연구소)이 3∼5위에 올랐다.

다시 허 박사의 말. “요즘 일반인은 경제서나 자기계발서를 많이 찾는 거 같아요.” 어찌나 똑똑하신지. 파피용을 빼면 모두 그렇다. 게다가 1위부터 5위까지는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언론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은 책이다.

이쯤 되면 한 번쯤 ‘베스트셀러’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양서라 부를 만큼 수준 높진 않다. 매스컴에 크게 소개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를 찾는다. 입소문.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베스트셀러 목록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만난 한성봉 동아시아 대표. “책이 사는 건 둘 중 하나예요. 마케팅이 잘돼서 베스트셀러로 소문나거나 아니면 언론에 주목받거나. 때문에 정말 좋은 책이 그냥 묻힐 땐 너무 안타까워요.”

하지만 베스트셀러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 바로 평범한 ‘우리’가 읽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면 뭐 하나, 이해가 안 가는 걸. 책만 보면 고개를 젓는 것보단 마음 편히 책에 다가가는 세상이 낫지 않을까. 베스트셀러는 그런 의미에서 열악한 출판계를 살리는 ‘라면’일 수도 있다.

물론 라면만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베스트셀러 두 권 살 때 한 권쯤은 쌀밥 같은 ‘양서’를 골라 보면 어떨까. 라면만 탐닉했던 나도 이번 연말엔 한 대표가 탄식했던 ‘이보디보,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지호)를 읽어야겠다. 베스트셀러도 올해의 책도 아니었지만, 소중한 우리의 책이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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