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조선/한국의 내셔널리즘과 소국의식

  • 입력 2007년 1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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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53년 11월 방한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왼쪽)과 이승만 대통령(가운데). 저자는 이 대통령은 한국 특유의 소국주의를 바탕으로 미국의 원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쳤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53년 11월 방한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왼쪽)과 이승만 대통령(가운데). 저자는 이 대통령은 한국 특유의 소국주의를 바탕으로 미국의 원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쳤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조선/한국의 내셔널리즘과 소국의식/기무라 간 지음·김세덕 옮김/461쪽·2만8000원·산처럼

한국의 미래에 대해 ‘작지만 강하다’는 강소국(强小國) 모델이 등장한 것은 민족주의 열정이 극적으로 분출된 2002년 월드컵 이후였다. 아일랜드나 핀란드 같은 모델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한국의 ‘강소국의 꿈’에는 묘한 전도(顚倒) 현상이 있다.

2000년 일본에서 나온 이 책은 한국의 그런 역설을 미리 내다본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민족주의(내셔널리즘)의 특징을 ‘소국(小國)의식’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언뜻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에 패배주의를 심어준 일제의 ‘반도 사관’을 떠올리게 한다. 그 뿌리를 전근대 중화주의 세계 질서에서 찾아 들어간다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그 논리의 맥락은 전혀 다르다. 일본 고베대 교수인 저자는 근대 이후 자국에 맞지 않는 대국의식이 일본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면 한국의 소국의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의 번영을 가져 왔다고 분석한다.

당시 민족주의를 분출한 제3세계 나라들이 수입대체산업화의 길을 걸을 때 한국이 외자 유치에 나서며 국제사회와 공조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국의식(한국은 소국이어서 자국의 힘만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없다)의 역설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국제질서로 자리 잡은 중화주의 아래 조공과 책봉의 관계가 대국인 중국뿐 아니라 소국인 조공국에 ‘윈-윈’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조선뿐 아니라 일본 베트남에도 해당한다.

문제는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인해 하나의 제국 중심으로 이뤄진 중화질서가 모든 국가가 동등하다는 베스트팔렌 체제로 바뀌면서 발생했다. 베스트팔렌 체제는 주권의식을 지닌 근대 민족 혹은 국가(네이션)의 산파였다. 여기에는 네이션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필수다. 조선은 그 자부심의 근거를 자국으로 이동하기 전에 열강의 침략을 받아 국가 역량의 한계에 절망했고 이것이 소국의식이 강화된 내셔널리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이 소국의식의 전개 양상을 이완용 이광수 주요한 이승만이란 인물에 투사한다. 그는 친미파-친러파-친일파-매국노로 변신한 이완용에게서 ‘가장 거대한 세력에는 타협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일관성을 찾아내고 무력투쟁론자-평화론자-친일파로 변해 간 이광수 주요한의 민족주의에서 ‘민족적 자부심’의 결여를 발견한다.

이런 맥락에서 특이한 인물이 이승만이다. 그는 한국 내셔널리즘에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도 “한국이 소국이기 때문에 대국(미국)이 원조해야 한다”는 역발상을 확립했다. 이는 해외로 수출 공세를 펼치면서도 외국산 자동차 수입에 난색을 표하고, 독도 소유권을 확신하면서도 이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기를 꺼리는 한국 특유의 행태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소국의식과 대국의식은 동전의 양면이다. 전후 일본 내셔널리즘도 대국주의에서 소국주의로의 전환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대한 멋진 되받아치기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남한과 반대의 길을 걸어간 북한의 주체민족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한국 사회의 화두 중 하나로 떠오른 민족-탈민족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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