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생명체=상품… 사이보그 21세기

  • 입력 2007년 1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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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다나 J 해러웨이 지음·민경숙 옮김/552쪽·2만5000원·갈무리

제목이 기괴하다. e메일 주소에 쓰는 ‘@’이 있는가 하면 상품의 저작권 표시를 나타내는 ‘ⓒ’와 등록상표임을 증명하는 ‘TM’이 뒤섞여 있다. 이뿐 아니다. ‘여성인간’ ‘앙코마우스’는 또 무슨 뜻일까.

당황하지 말라. 책을 읽고 나면 제목에 이 책의 주제가 완벽히 담겨 있음에 놀라게 된다.

저자는 1985년 ‘사이보그들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페미니스트 문학평론가다. 현대 인간이 유기체와 기계의 합성물인 사이보그와 다름없다며 사이보그의 시대를 ‘사이버컬처’로 보고 첨단 테크놀로지가 인간 의식과 사회, 권력과 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분석한 글이다.

저자의 말처럼 현대 사회는 사이보그의 시대다. 물리적으로 육체와 기계가 결합되지 않더라도 휴대전화, 컴퓨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떠올려 보라.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산다는 점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는 생명체와 상품 또는 기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하나인 앙코마우스가 대표적이다. 앙코마우스는 암 정복을 위해 암 유전자를 이식받은 실험용 쥐. 쥐는 분명 생명체지만 암 치료를 위한 의학상품이기도 하다. ‘TM’ 표시를 단 것은 그 때문이다. 여성인간ⓒ은 상품화된 여성성과 인간을 넘나드는 여성의 현실을 빗댄 표현이다. 유전자는 생명인 동시에 조작과 이식 복제가 가능한 기계 상품이다. 현대 사회는 첨단 기술이 생명을 변형시키고 조작하는 유전공학의 시대다.

해러웨이는 이들을 통해 생명체를 상품화하는 세계를 비판한다. 이것이 다는 아니다. 헤러웨이는 상품화를 비판하지만 여성인간 앙코마우스 유전자야말로 그 자체로 서구 사상과 철학을 지배한 이분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교란시키는 현 시대의 증언자라 말한다. 그 자체로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존재만으로 이 시대를 증명하는 목격자들. 그래서 겸손하다는 것.

해러웨이의 분석은 앙코마우스 같은 존재가 오늘날 순혈주의를 붕괴시키는 아이콘이며 따라서 이들의 존재를 거부하는 건 또 다른 인종차별주의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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