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얌전한 김과장 노래방 ★되다

  • 입력 2007년 12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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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된 ‘소심남’ 김 부장 평소 말 한마디 않고 지내는 내성적인 김 부장(40). 이미지 쇄신을 위해 ‘원더걸스’의 ‘텔 미’에 도전했다. 열 살 난 딸에게 받은 CD를 듣고 동영상을 보며 이들의 춤을 연습했다.

드디어 송년모임. “한 곡 하겠다”는 김 부장이 마이크를 잡기도전에 화면에 ‘텔 미’ 두 글자가 등장하자마자 모든 동료가 일어나 다 같이 외쳤다.

“테테테테테 텔∼미.”

#‘쪽박 찬’ 이 대리

일 잘한다는 이 대리(30). 노래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휘트니 휴스턴의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을 불렀다.

음정, 박자, 고음 처리가 모두 완벽에 가까웠지만 동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황한 이 대리는 록 가수 김경호의‘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예약해 불렀다.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 대리의 노래보다 더 시끄럽게 수다를 떨었다.》

‘송년 모임의 완성’ 격인 노래방. 누구나 1인자를 꿈꾸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소심남’을 스타로 만들고 ‘능력남’을 2인자로 만드는 노래방. 노래방에서 노는 법을 다년간 연구해 온 인터넷 노래방 동호회 ‘놀방파’ 회원 7명에게 ‘노래방 1인자 되는 법’에 대해 들어봤다.

○ 선곡은 게임이다

놀방파 회원들이 첫 번째로 뽑은 1인자의 조건은 바로 선곡이었다. 놀방파 운영자 박진(28·웹 디자이너) 씨는 “누구나 잘 알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을 선택하면 노래 실력과 상관없이 주목을 받는다”고 말했다.

잘 알려진 노래라고 무조건 호응이 좋은 것은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나 김건모의 ‘핑계’ 등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잘 불러봐야 본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진지하고 철학적인 노래들은 자칫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가급적 그해 히트한 흥겨운 곡에 도전하라”는 ‘놀방파’ 회원들은 ‘원더걸스’의 ‘텔 미’나 ‘빅뱅’의 ‘거짓말’, 김아중의 ‘마리아’ 등을 추천했다. 올해는 10대 아이돌 댄스그룹이나 아이비, 윤하 등 여성 가수들이 인기를 얻은 만큼 이들의 노래를 부르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최신곡이 이어져 지루해졌다면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나 소찬휘의 ‘티어스’ 등 가창력이 필요한 곡이나 나미의 ‘빙글빙글’,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 이정현의 ‘와’ 등 빠른 댄스곡에도 도전해볼 만하다. 이러한 곡들은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선곡만으로도 주목을 받는다는 게 장점이다. 물론 어려운 곡을 잘 소화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선택하지 않는 게 낫다.

전통적으로 노래방에서 강세를 보였던 ‘트로트’는 올해도 인기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04년 이후 장윤정의 ‘어머나’, ‘짠짜라’ 등 신세대 여성 가수들의 트로트 곡이 인기를 얻었다면 올해는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 박상철의 ‘무조건’, ‘슈퍼주니어’의 ‘로꾸거’ 등 남성 트로트 곡이 대세라는 것.

팝송은 아무리 잘 불러도 가요만큼 넓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예를 들어 터프함을 강조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스틸 하트’의 ‘쉬즈 곤’ 같은 록 발라드 곡을 악써 가며 부르는 일은 좋지 않다. 박진 씨는 “노래방은 친목을 도모하는 곳이지 자신의 노래 실력을 과시하는 곳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촬영 : 박영대 기자


촬영 : 박영대 기자


촬영 : 박영대 기자

○ 춤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노래방에서 웬 춤?’이라고 의아해하던 시대는 지났다. 흥겨운 송년회 분위기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선곡 다음으로 알맞은 몸짓이 중요하다. ‘놀방파’ 멤버 송햇귀로니(23·대학생) 씨는 “전문 댄서처럼 멋있게 춤을 추는 것보다 핵심 포인트만 극대화한 동작이 더 주목을 받는다”고 말했다.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는 노래 중간 손가락을 돌리는 ‘돌아이 춤’, 원더걸스의 ‘텔 미’는 흐느적거리는 ‘오징어 춤’이나 ‘어머나 춤’, 박진영의 ‘허니’는 디스코 ‘찌르기 춤’ 등 간주 부분에 한 동작만이라도 확실히 추면 1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동작도 잘 못하겠다면? 망가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 소품은 ‘가수’의 분신

노래방이 밀폐된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천만의 말씀. 노래방 안팎을 둘러보면 무궁무진한 소품들이 숨겨져 있다. 안영준(30·소설가) 씨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주위 물건들을 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소품 중 하나로 꼽히는 휴지의 경우 휴지 상자에서 휴지를 계속 뽑으며 춤을 추거나(1단계), 슬픈 발라드곡을 부를 때 삼각형 모양으로 눈에 끼워 ‘만화 주인공 눈물’처럼 연출하는(2단계)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또 ‘접시돌리기 춤’을 접시 대신 노래방 책으로 하거나 섹시 댄스를 선보일 때 밍크 장갑 대신 노래방 화장실에 있는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는 것도 좋은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

탬버린은 흔한 소품이 돼 아무리 신나게 흔들어도 1인자가 되기엔 힘들다. 김나경(25·책 디자이너) 씨는 “빠른 노래든 느린 노래든 무조건 탬버린을 흔들면 오히려 ‘소음공해 유발자’로 찍히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노래방 리모컨과도 친하면 좋다. 특히 ‘리듬변환’을 적절히 이용하는 센스도 필요하다. 김혜미(23·여·대학원생) 씨는 “진지한 노래를 부르다 반응이 없으면 하우스, 테크노 등으로 리듬변환을 해 부르면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예약’ 버튼과 친해져 연속으로 3, 4곡을 예약하거나 사장이 노래하는데 ‘1절만’ 버튼을 눌러 노래를 끊는 등 리모컨을 ‘무기’로 사용하다간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수 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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