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옥자]‘박물관 살리기’ 공약은 없나요

  • 입력 2007년 11월 2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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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 대선 주자의 면모도 분명해졌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관심은 그들의 정책이나 국가 경영의 비전보다 비리 폭로와 상대방에 대한 공격으로 대선판이 어떻게 요동치며 뒤집힐까 하는 데만 쏠려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군수나 시장을 잘못 뽑으면 몇 년을 후퇴한다고 한탄하는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대통령을 뽑는 데 정책을 살피는 일은 뒷전이니 본말이 전도됐다.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정책 중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문화예술 분야인 것 같다. 이 분야의 주요 공약은 양과 질이 모두 수준 미달이고 그나마도 문화산업 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다. 예산도 한결같이 2% 내외여서 이 분야에 대한 후보들의 인식 수준을 드러낸다.

일자리 창출이니 교육 문제니 하여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어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우리 사회도 먹고사는 문제 못지않게 삶의 질을 생각할 때가 됐다. 몇 년 후를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의 현안에만 매달리다 보면 국가 발전은 뒷걸음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문화를 입에 올리고 살던 시절도 없었다. 부국강병을 최고 가치로 한 군사대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이제는 문화대국을 지향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문화대국은 지식기반 사회이자 정보화 사회이고 사람의 이성은 물론이고 감성에 호소하는 사회이다. 문화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필수적인 존재 중의 하나가 박물관이다.

대선 후보들 문화예술정책 소홀

요즘 계속 수는 늘어나지만 운영상의 어려움이 많은 곳이 박물관이다. 서울만 해도 국립·시립박물관, 대학박물관 등 든든한 운영 주체가 있는 곳 외에 개인이 설립해서 운영하며 서울시에 등록된 사립박물관만 50여 개가 있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삼청동이나 가회동에 많이 생긴 사설 박물관 중 일정한 테마를 가진 박물관이 많다. 예를 들면 자수박물관, 장신구박물관, 텍스타일 박물관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닭박물관도 생겼다. 닭을 주제로 한 동서고금의 온갖 물건을 수집해 놓았는데 소재며 표현의 다양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립자 얘기를 들으면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립박물관 설립자들은 우연한 기회에 어떤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해서 평생 동안 여기에 자신의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이제는 개인 취미를 넘어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는 장을 마련하려는 좋은 의도에서 박물관을 연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열정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파생되는 애로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운영자금의 문제다. 구경은 공짜라는 인식 때문인지 호기심에 들어왔다가 입장료가 있다고 하면 영화 관람료만큼도 안 되는데 그냥 나가는 일이 허다하다는 얘기다. 적자로 운영하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소장품을 하나씩 팔아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박물관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 유의하여 이들의 영세성을 국가적인 지원으로 메워 주어야 한다.

더 심각한 일은 박물관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필수 요원인 학예사 문제다. 박물관의 소장품을 연구하여 설명문과 도록을 만들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특별전시회를 열어야 하는데 이들의 능력과 기획력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현장에서 관람객에게 다가가며 친절하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오랜 연마 끝에 얻어진다.

사립박물관 등 지원대책 세워야

이들의 임금이 월 100만 원 정도이다. 대부분이 준학예사 자격증을 갖고 있고 대학원에 다니며 경험과 경력을 쌓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하기 때문에 이것이 통용되지만 이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국가에서 그 액수만큼 보조한다면 마음 놓고 연구에 몰두하여 박물관 인재로 커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열정을 갖고 시작한 사설 박물관이 성장하도록 지원대책을 세울 일이다.

일반인이나 어린이가 곳곳에 있는 박물관을 순례하며 교양과 안목을 높이고 창조의 아이디어를 얻으며 심미안을 길러 문화인으로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문화국가가 되는 지름길이다.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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