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책]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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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이옥순 이종득 이태주 이평래 이희수 조흥국 한건수 지음/451쪽·1만9800원·삼인

예전 부모는 교과서의 내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군사부일체의 나라에서 교과서는 곧 진리의 권위를 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부모는 다르다. 자녀들의 교과서를 읽다가 내용의 부실함에 깜짝 놀란다. 내용의 편향성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 관계의 오류가 만만치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교과서포럼에 참여한 학자들이 근현대사 교과서의 한국사 비하를 비판하고 나섰다면 이 책의 필자들은 사회·지리·역사 교과서의 제3세계 역사 왜곡을 지적했다. 7명의 필자는 중앙유라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이슬람,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우리 교과서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지역의 전문가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중학교 사회1(금성출판사) 교과서에서 흑인종을 비하하는 ‘니그로 인종’이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니그로라는 말이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흑인 노예에 대한 경멸적 표현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1960년대부터 금기시한다는 것은 웬만큼 영어를 배운 사람에겐 상식이다. 같은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인디오’가 아닌 ‘인디헤나’로 표현해야 하지만 이를 무시한 교과서도 상당수였다.

알라는 곧 신을 뜻하기에 알라신이 아닌 알라로 표현해야 한다거나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도착한 것일 뿐이라는 상식도 무시되기 일쑤다. 아랍의 ‘아라비아 만’과 이란의 ‘페르시아 만’ 호칭 분쟁으로 중립적인 ‘걸프 해’로 표기하는 지역을 거의 모든 지리부도와 역사부도가 ‘페르시아 만’으로만 표기하는 무감각도 마찬가지다.

이들 지역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웃지 못할 내용도 많다. 몽골의 이동식 천막 ‘게르’를 앙숙인 중국의 언어인 ‘빠오’로 쓴다거나 아랍에선 금지된 무하마드의 초상화를 그려 넣기도 한다.

인도 카스트 제도의 복잡한 성격을 몰라 이를 지배-피지배 계급으로 단순화했다는 지적이 겸연쩍다면, 대부분의 교과서가 멕시코 남부의 마야 문명과 멕시코 중부의 아스테카 문명을 혼동하거나 이질적인 두 문명을 계승 관계로 착각하고 있다는 지적엔 낯이 뜨거워진다.

이슬람 칼리프 왕조 ‘우마이야’를 ‘옴미아드’라고 엉뚱하게 호칭하고 흑인이 많은 브라질에 흑인 인구가 없는 도표를 삽입하면서 흑인이 거의 없는 칠레에는 흑인 인구가 90%에 육박하는 도표를 넣는 식의 기초적 오류 앞에선 할 말을 잃는다.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 사로잡혀 흉노,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 등 유목민의 역사는 물론 문화권 지도에서 그들의 활동 공간을 아예 공백으로 처리하면서 과연 중화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이런 우리 교과서를 두고 다른 나라 교과서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 눈의 티는 잘 찾으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말에 해당되지 않을지. 제발 아이들에게 읽힐 때 부끄럽지 않은 교과서를 만들자.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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