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삶의 벼랑끝, 꿈꾸는 하류인생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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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못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오늘날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꼽히는 대작가가 된 모옌. 그는 항상 “내 작품의 바탕이 되는 것은 고향 농촌의 풍경과 정서”라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못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오늘날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꼽히는 대작가가 된 모옌. 그는 항상 “내 작품의 바탕이 되는 것은 고향 농촌의 풍경과 정서”라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홍까오량 가족/모옌 지음·박명애 옮김/687쪽·1만8000원·문학과지성사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모옌 지음·박명애 옮김/1권 296쪽, 2권 272쪽·각권 9000원·랜덤하우스코리아

모옌(莫言·52)의 삶은 빈한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면서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20대에 들어설 때까지 그는 부랑자에 가까웠지만 군 입대 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소설가로서 인생이 시작된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대작가가 됐지만 그는 “내 창작은 결국 하층민으로 겪은 내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항상 말한다.

모옌의 소설 ‘홍까오량 가족’과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가 출간됐다. 판타지풍의 실험작 ‘풀 먹는 가족’도 함께 나왔다. 때마침 모옌은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한중문학인대회 참석차 방한한 터다. 12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나는 사회 문제를 피하는 작가가 아니며 이슈를 정면으로 대하는 작가와 예술적으로 접근하는 작가가 있다면 나는 후자”라면서 “내 소설은 대개 고향 산둥(山東) 성 가오미(高密) 현이 배경이지만 그곳은 중국의 축약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까오량 가족’과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홍까오량 가족’은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으로 잘 알려졌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소설의 일부 내용을 영화화한 것. 모옌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이 소설은 1920∼40년대 가오미 현을 배경으로 일제의 만행에 시달리다 일본군에 맞서는 중국 농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한센병을 앓는 양조장집 아들에게 시집간 따이펑리옌은 가마꾼 위잔아오와 사랑에 빠져 아이(소설의 화자)를 갖고 위잔아오는 양조장집 부자를 죽인 뒤 마을의 실세가 돼 농민을 규합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지는 일제의 착취에 맞서 일본군과 가오미 현 민초들이 벌이는 전투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살육의 현장도 그렇지만 학살당한 농민이 묻힌 무덤 속 시체를 노리는 개떼와도 싸워야 하는 등 참혹한 장면이 이어진다. 끔찍한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도 탁월하거니와 “평범한 사람들의 쓰러지지 않는 정신을 믿는다”는 작가의 신념은 방대한 작품 전체에서 꼿꼿하다. “고향에선 해마다 키 작은 농작물을 심으면 홍수로 몰사하기 때문에 키가 큰 수수만 심어야 했다”면서 작가는 “그 수수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제목의 의미를 밝혔다.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홍까오량 가족’에서의 시간이 한참 지난 뒤 한 마을이 배경이다. 산둥 성 톈탕(天堂) 현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룬 1980년대 중국의 상징이다. 그렇지만 이 마을이 과연 이름처럼 ‘천당’일까. 까오량과 까오마라는 두 사내가 온몸으로 겪는 부정부패는 그야말로 천당의 반대편이다.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민정 담당 직원은 귀찮아하기만 하고 느닷없이 구치소에 잡아 가둬서는 오줌까지 먹이는 고통을 안겨 주며 죽은 동생의 시신을 오빠가 팔아 버리는 행위까지도 목격한다.

모옌은 이 소설을 단 35일 만에 썼다고 한다. 지방 정부의 관리 소홀로 마늘종의 판매 부진 사태를 맞자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글을 썼다. 짤막한 기사에서 부박한 농촌의 현실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다시 중국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끄집어낸 모옌. 그는 “나는 항상 개인적 동기에서 모티브를 얻지만 독자들은 거기에서 보편적 시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황석영 씨의 ‘객지’, 이문열 씨의 ‘사람의 아들’, 신경숙 씨의 ‘외딴 방’ 등을 읽고 감동받았다면서 그는 “최근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씨와 얘기했는데 한중일 3개국의 문학에는 서양의 것과는 다른 공통된 특징이 있다는 데 공감했다”며 “동아시아 문학이 세계적으로 발전하려면 3국이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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