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어린이는 따라 하지 마십시오

  • 입력 2007년 10월 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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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이 세상의 잡다한 것으로부터, 혹은 세속적인 시련으로부터 격리되어 우아하게 살게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란 누더기에서부터 쏜살같이 도망친다 해도 어느 날 문득 예전의 그렇고 그런 자리에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삶이 부여하는 통상적인 담금질로부터 자유롭기는 정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침묵 기도로써 버티기로 작정한 성직자나 벽면 참선을 결심한 스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통상적인 삶의 모습 속으로 편입되거나 노출되어 버릴까 전전긍긍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숨어 사는 모습이 더욱 세속적으로 보일 때가 없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처럼 어렵다는 뜻도 되겠지요.

길을 가다가 강을 만나면 그 물길을 반드시 건너야 맞은편 강둑에 닿을 수 있다는 점은 상식이겠지요. 그 지당함이 때때로 우리를 미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 가지 상념의 틀 속에 갇혀 살다 보면 이것이 바로 비극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단순히 누구의 것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인데도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두더지만 땅속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봅니다. 여우도 땅속으로 여행이 가능함을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땅 위 생활을 할 수 없는 두더지의 불행은 자기는 땅굴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햇살이 비치는 곳의 생활을 지레 겁먹고 일찌감치 단념한 나머지 눈이 멀기 시작하지 않았는지 의심해 봅니다.

두더지의 처지에서 보면 눈이 멀었다는 사실이 퇴화가 아닌 진화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네 발 가진 짐승이었겠지만 지금은 두 발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두 앞발은 손이란 이름으로 퇴화되었거나 진화된 결과입니다. 퇴화된 것이든 진화된 것이든 따진다는 일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게 보입니다.

눈치 빠르고 민첩하기로 소문난 여우 가족이 숙연한 긴장감 속에서 강을 가로질러 건너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강을 건너가는 것이 아닙니다. 강을 이불처럼 뒤집어쓴 채 건너간다는 표현이 옳겠지요. 여우 가족이 구성하는 한밤중의 파격이 우리를 긴장시킵니다. 불행한 것은 우리들이 그들의 파격을 감히 흉내 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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