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고향山그늘 국화주 한병 껄껄거려도…아!눈물이 난다

  • 입력 2007년 9월 22일 02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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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산행/박원식 지음/400쪽·1만6000원·크리에디트

◇허시명의 주당 천리/허시명 지음/336쪽·1만4000원·예담

산에 올라 옛 사람의 흔적을 만나고 전통 술을 마시며 그 안에 담긴 풍류를 음미하는 일. 분명 낭만적이다. 여기에 휘영청 한가위 보름달이 함께하니 그 낭만 말해서 무엇하랴.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마주한 고향의 산도 다시 한번 바라본다.

‘천년 산행’은 옛 사람과 함께하는 우리 산 탐승기다. 우리 산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그 산에 아로새겨진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되짚어내 그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준다.

충남 예산 덕숭산과 만공 스님, 전남 강진 만덕산과 정약용, 전남 해남 두륜산과 초의선사, 경남 합천 가야산과 최치원, 충남 부여 만수산과 김시습, 경북 봉화 청량산과 퇴계 이황, 전북 부안 쌍선봉과 매창, 전남 신안 흑산도 선유봉과 정약전 등 명산 20곳과 선인 20인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눈발이 흩날리는 해남 두륜산. 대흥사 뒤로 올라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에 당도한 저자는 차 한 잔 마시며 초의를 불러낸다. 초의선사에게서 “차 마시는 것은 대도(大道)를 얻는 일”이란 얘기를 듣는다. 그러고는 초의의 지우(知友)였던 추사의 익살스러운 편지글 가운데 ‘초의! 그대의 차가 떨어져 마실 수가 없으니 혓바늘이 돋고 정신이 다 멍해지네. 빨리 차를 보내게’라는 대목도 떠올린다. 곧이어 눈 내린 일지암의 풍광에 온몸을 기댄 채 그리움과 기다림에 대해 깊게 사색해 본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청량산에서 퇴계를 만나고 만덕산에서 다산과 함께 걷고 쌍선봉에선 기생 매창과 시를 주고받는다.

청량산에서 퇴계에게 “산이 무엇이냐”고 묻자 퇴계는 이렇게 답한다.

“나의 호 퇴계(退溪)의 뜻처럼 뒤로 물러나 산야에 묻히는 게 내 평생의 숙원이오. 만고에 의연한 청산의 이법을 마음 안에 끌어들여 도의(道義)를 배양하고 심성을 기르는 데 나의 즐거움이 있음이 아니런가.”

그렇다. 퇴계의 말을 듣고 나니 우리 산이 더욱 높고 견고해 보인다.

‘주당천리’에선 술 냄새,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오랫동안 전통 술 문화를 탐구해 온 저자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세월 속에 묻혀 가는 우리 술 냄새를 다시 불러냈다. 묵묵히 술을 빚는 술 장인들, 저마다의 독특한 사연이 담긴 술 제조법, 술을 벗 삼았던 옛사람들의 풍류 등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가득하다.

저자는 경주법주의 ‘화랑’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좋아해 당나라에까지 술 냄새를 풍겼다던 김유신의 이야기, 경주 안압지에서 주사위를 던지며 내기를 즐겼던 신라 사람들의 음주 풍류 이야기를 곁들인다.

‘화랑’의 색다른 제조법도 재미있다. 보통 전통 약주의 제조 기간이 30일인데 화랑의 발효기간은 150일. 게다가 발효시키는 동안 국악과 서양 클래식 음악도 들려준다. 발효 중인 술독 안에서 수많은 미생물이 음악을 듣고 꿈틀거리면서 더 좋은 술맛을 내주길 기대하는 것이라고 하니, 술 만드는 정성이 참으로 대단하다.

술이 센 동네로 유명한 제주도로 가보자. 고려시대 몽골의 지배를 받았을 때 제주에 소주가 전래된 이야기, 유배 생활을 하던 추사 김정희가 즐겨 먹었다는 보리누룩 술 이야기, 계란과 참기름이 들어가는 독특한 오합주 이야기에 이르면 적당히 취기가 올라오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이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유혹하는 술 냄새를 따라갔다. 거기엔 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술에 인생을 건 장인이 있었고 곰삭은 문화가 있었고 휘청거리는 역사도 있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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