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원의 펄프픽션]<끝>레이먼드 챈들러 ‘롱 굿바이’

  • 입력 2007년 9월 22일 02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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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탐정 ‘말로’ 시리즈 6번째

추리보다 거친 스타일에 매력

무라카미 하루키가 12번 이상 반복해 읽었다는 책, 스티븐 킹이 문체를 배웠다는 책, 폴 오스터도 극찬한 책, 바로 레이먼드 챈들러의 ‘롱 굿바이’(하서)다. 챈들러는 ‘말타의 매’의 대실 해미트, ‘움직이는 표적’의 로스 맥도널드와 함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꼽힌다. 1930∼1950년대 미국의 펄프픽션을 풍미했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비정한 현대 도시를 사실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묘사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비열한 뒷골목, 트렌치코트 차림에 회색 담배 연기를 올리며 필립 말로가 등장한다. 이제는 전설이 된 사립탐정 말로는 매력적인 ‘나쁜 남자’의 전형이자 작가의 분신이다. 비평가 가와모토 사부로의 표현대로, 말로는 도시 속에서 황야를 보는 고독한 늑대다. 정의를 앞세우다가 경찰에서 해고당한 말로는 사립탐정 사무소를 개업한다. 수입은 별로 없고 얻어터지기 일쑤지만 미모의 여자들이 곧잘 따르는 매력남이다.

말로는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백발의 남자인 테리 레녹스를 곤경에서 구해준 뒤 술친구가 된다. 어느 날, 레녹스는 말로를 찾아와 아내가 살해됐다고 털어놓는다. 친구의 결백을 의심하지 않는 말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레녹스의 도주를 돕는다. 그러나 곧바로 레녹스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한편 로저 웨이드라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타나, 알코올의존증인 자신을 보호해 달라며 거액을 제시한다. 말로는 돈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순전히 정의감에서 그를 돕는다. 살해당한 백만장자의 딸, 권총 자살한 친구, 알코올의존증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와 미모의 아내, 그리고 끊임없이 이 일에서 손을 떼라고 말로를 위협하는 무리들이 서로 얽히게 된다.

‘롱 굿바이’는 필립 말로 시리즈 6권 중 마지막 편이다. 1939년 ‘빅 슬립’에 처음 나올 때 30대 중반이었던 말로는, 1954년작 ‘롱 굿바이’에서는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이른다. ‘롱 굿바이’와 ‘안녕 내 사랑’ 등 이 시리즈는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특히 ‘빅 슬립’에서 주연한 험프리 보가트의 이미지가 말로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필립 말로의 묘미는 주도면밀한 추리보다 거칠면서도 거침없는 스타일에서 나온다. 위험천만의 순간에도, 말로는 여유 있게 세상을 향해 명대사를 내리꽂는다. “여기서 잘 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네. 정말 잘 가라는 말은 벌써 해 버렸단 말이야. 잘 가라는 말은 슬프고 쓸쓸하고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을 거야.”

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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