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 대못질’]제1부⑬ ‘정책홍보 점수제’

  • 입력 2007년 9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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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정정보도 많을수록 높은 점수”… 법적 대응 남발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외교통상부 1층 제1브리핑실에서 외교부 한 국장이 브리핑을 했다. 브리핑 내용은 통상교섭본부장이 며칠 뒤 해외에서 열리는 한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고위 공무원의 해외 방문 같은 동정은 공보실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국장은 왜 굳이 브리핑을 했을까.

관가에서는 정책홍보관리 평가 점수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가 올해 6월 말 개정한 ‘2007년 정책홍보관리 평가 지침’(이하 평가 지침)에서는 원래 6점(100점 만점)이었던 ‘장차관 대언론 홍보활동’ 항목이 ‘대언론 브리핑’으로 바뀌면서 배점도 15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정부 부처가 정책홍보관리 평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년 각 부처의 정부 업무를 평가할 때 정책홍보관리 부문은 ‘주요 정책과제’(100점 만점 기준으로 25점) 다음으로 높은 배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을 국민에 잘 알리는 기능을 해야 할 정책홍보관리 평가가 오히려 정부와 언론의 반목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공직사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 ‘언론에 재갈 물리는 희한한 배점 체계’

국정홍보처의 ‘2006년 정책홍보관리 평가원칙 및 분류기준’에는 ‘정책보도 수용 및 대응의 적절성’ 부문에 ‘대응할 기사’ 항목이 있다. 한마디로 언론의 비판 보도에 얼마나 잘 대응했느냐를 측정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응 신속성’을 측정 평가하는 방법이다. 이른바 문제 보도가 발표된 지 24시간 이내에 대응해야 측정 수식에서 가중치 5점을 받을 수 있다. 48시간 안에는 3점, 72시간 안에는 1점인 반면 72시간이 지나면 가중치가 없다.

본보가 6월 초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해 논란이 일자 정부업무평가위원회는 같은 달 개정한 세부지침의 대응 신속성 측정에서 대응 시한과 가중치를 바꿨다. 보도일로부터 5일 이내에만 대응하면 가중치를 2점 주기로 했다.

또 ‘대응기사 적정성’ 항목에서는 언론중재위원회 중재 신청이나 소송 등 법적 대응에 의한 정정 반론보도가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도록 했다. 현 정부 들어 각 부처의 언론중재 신청 건수(7월 현재까지 702건)가 김대중 정부(118건)에 비해 5배 이상 많아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부처 홍보담당 공무원은 “이런 대응 기사 항목이야말로 언론에 재갈 물리기”라고 털어놨다.

물론 이 부문에는 ‘수용기사 이행정도’ 항목도 있다. 언론이 지적한 사항을 얼마나 잘 수용해 정책에 반영했는지, 법령을 제정하거나 개정했는지를 측정한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정책에 반영하거나 법령까지 제정 및 개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대부분 ‘단순 참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항목은 ‘대응 기사’ 항목의 언론에 대한 ‘공격성’을 물타기 위한 형식적 항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가욋일에 제 할 일마저 버거운 공무원

정책홍보관리 평가의 ‘매체활용 홍보’ 부문을 보면 ‘인터넷 앞에 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부처 홍보관계자들의 푸념이 이해된다.

‘국정브리핑 정책기사 관리’(3점) 항목을 보면 각 부처는 국정홍보처가 운영하는 인터넷 국정브리핑 사이트에 정책기사를 많이 올리고 페이지뷰를 증가시켜야 높은 점수를 받는다. 또 국정브리핑과는 별도로 각 부처는 국정브리핑에 기사를 공급할 부처별 뉴스사이트(3점)를 만들어 잘 관리해야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각 부처는 팀(과) 또는 개인별로 국정브리핑 블로그(3점)를 개설해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공무원의 순환보직 시스템을 간과한 ‘억지춘향식’ 평가라는 지적이 많다. 한 팀(과)에서 국정브리핑 블로그를 제작·관리하던 공무원이 다른 팀(과)으로 이동한다면 블로그 ID나 게시물을 후임자에게 옮겨 주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인력 낭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언론 브리핑’ 항목 때문에 브리핑할 만한 사안이 없는데도 점수를 올리기 위해 장차관 및 실·국장 등 정책책임자가 알맹이 없는 브리핑이 남발한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많은 일선 홍보담당 공무원은 ‘정책홍보관리 평가만 아니라면 쓸데없는 브리핑이나 자료들은 많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메아리 없는 정책홍보

‘정책고객서비스’(10점) 부문은 각 정부 부처가 정책을 e메일로 정책고객에게 보내 홍보하고 만약 정책고객의 피드백이 있다면 그것들을 수집해 정책에까지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고객에게 보낸 정책홍보 e메일이 대부분 개봉되지도 못하고 폐기된다는 데 있다. 정책홍보 e메일 개봉률은 2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책홍보 e메일이 쓰레기편지(스팸메일)로 전락하는 것이다. 또 각 부처는 정책홍보 e메일을 받은 특정 고객이 얼마나 많이 열어 보느냐까지 신경 써야 한다.

‘정책홍보 성과’(8점) 부문의 ‘공기업 협력홍보 성과’ 항목은 지난해 신설된 것으로 각 부처가 산하 공기업과 얼마나 협력홍보가 잘되는지를 평가하게 했다. 각 부처는 산하 공기업과 협력 홍보한 모범 사례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억지로 예산을 들여 ‘홍보 이벤트’를 만드는 사례까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국고로 운영되는 KTV, 각부처 홍보방송 만들 땐

해당부처 예산 끌어다 써▼

정책홍보관리 평가 기준의 ‘매체활용 홍보’ 부문에는 ‘KTV 공동제작 실적’(3점/100점) 항목이 있다. 각 부처에서 국정홍보처 산하 정책홍보 방송인 KTV와 공동으로 기획 제작한 정책 프로그램 1건을 평가한다. 이 항목은 2005년까지는 정책홍보관리 평가 기준에 들어 있지 않다가 지난해 신설됐다.

문제는 KTV와 각 정부 부처가 제작은 공동으로 하지만 제작비는 해당 부처 예산으로 집행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고로 운영되는 KTV에 왜 각 정부 부처가 추가로 예산을 대주면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정병국 의원이 국정홍보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7개 정부 부처가 KTV와 홍보 프로그램을 공동제작했고 총제작비는 16억1400만 원으로 모두 해당 부처 예산에서 집행됐다. 37개 부처 가운데 정책홍보관리 평가 대상은 30개다. KTV의 올해 예산 가운데 방송 프로그램 제작 예산은 82억6400만 원이다.

또 정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 부처와 KTV가 프로그램 공동제작을 할 때 많은 경우 외부 제작 프로덕션에 재용역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KTV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KTV를 두고 “다른 방송과 비교해도 내용이 상당히 알차다”, “장관들도 KTV를 통한 정책 홍보에 특별한 관심을 갖도록 하라”며 관심을 표했지만 KTV의 시청률은 0.05% 안팎이다. 전체 케이블 채널 90여 개 가운데 50위권에 지나지 않는다.

한 정부 부처 홍보담당 공무원은 “원래 KTV의 역할이 국고를 사용해 국정 현안을 취재해 보도하는 것 아니냐. 각 부처 예산을 그 프로그램 제작비에 쓰는 것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자칫 예산 낭비가 될 수 있는 KTV 공동제작 항목은 정책홍보관리 평가에서 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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