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파격…중견시인 문정희-이시영 새 시집

  • 입력 2007년 6월 2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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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권의 책이 있다. 문정희(60) 시인의 ‘나는 문이다’(뿔)와 이시영(58) 시인의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창비). 등단 30여 년이 된 시인들의, 그간 나온 10여 권의 시집 위에 새롭게 놓인 시집이다. 중견 시인들의 원숙한 시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기회다.

미당 서정주가 발문을 쓴 첫 시집을 고교 때 낸 문정희 씨. 천재들은 조로하기 쉽지만 문 씨의 열정은 식은 적이 없다.

‘뼛속까지 살 속까지 들어갈걸 그랬어/내가 찾은 신이 거기 있는지/천둥이 있는지 번개가 있는지/알고 싶어 보고 싶어 만나고 싶어’(‘뼈의 노래’에서)라고 노래하듯 그는 온몸을 다해 뮤즈를 파고들고 싶어 한다. 불같은 열정만큼이나 시에 대한 경건한 마음도 엿볼 수 있다. ‘이 숲을 빠져나가려면/왕성한 침묵부터 배워야 하리라/키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 사이/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허공으로 뻗치다가 짐짓 찰랑거리는/언어의 절제’(‘숲 속의 창작교실’에서).

문정희 시인 하면 떠오르는 ‘사랑에 대한 열렬한 예찬’도 풍성하다. 확실히 “그녀의 시는 사랑을 논할 때 가장 활기차고 매혹적”(평론가 이혜원)이다.

‘사랑은/짧은 절정, 숨소리 하나 스미지 못하는/순간의 보석’(‘아침 이슬’에서)이나 ‘마치 독약을 마시듯이 휘청거리며/탱고처럼 짧고 격렬한 집중으로/두 조각 입술이 만나는/숨 가쁜 사랑의 순간’(‘두 조각 입술’에서) 같은 시편은 인생에서 사랑이 얼마나 커다란 에너지가 되는지를 일깨운다.

200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작품을 써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을 받는 이시영 씨. 새 시집에서 그는 정제된 단시에 사회적 의미를 집약시키고자 한다. “때론 한 줄의 기사가 ‘가공된 진실’보다 시다웠다”는 이 씨는, 그래서 팩트(fact)만을 재구성하거나, 시 안에 기사와 칼럼 등을 인용해서 전달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습 시에 사용한 폭탄은 ‘M483A1’이라는 대량살상무기인 정밀유도 폭탄이라고 하는데, 이는 미국에서 생산된 것이고 세계의 분쟁 지역마다 즉각적으로 아주 비싼 값에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부시는 라이스 장관이 중동을 이륙한 직후 가진 주말별장 회견에서 산뜻한 와이셔츠 차림으로 서서 전날 밤 남부 레바논 카나 마을에 밤새도록 퍼부어진 이 무차별 폭격을 새로운 중동 탄생을 위한 산통이라고 했다.’(‘전쟁범죄자들’) 이 건조한 문장은 놀랍게도 전쟁의 잔인함을 절실하게 일깨운다.

이 씨는 이런 방식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와 세계 각국에서 여전한 폭력의 문제를 고발한다. 낯설고도 묵직한 시편들은 시와 삶이 다르지 않았던 시인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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