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지식인들 실학연구, 신문지면이 논의의 場 됐다”

  • 입력 2007년 6월 1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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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보가 1934년 9월 동아일보에 6회 연재한 ‘유일한 정법가 정다산 선생 서론’은 신문을 통해 실학 연구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알린 효시로 꼽힌다.
정인보가 1934년 9월 동아일보에 6회 연재한 ‘유일한 정법가 정다산 선생 서론’은 신문을 통해 실학 연구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알린 효시로 꼽힌다.
최재목 교수
최재목 교수
국권을 상실한 일제강점기에 우리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암울함으로 상징되는 강점기에 당시 인문학자들은 신문을 통해 어두운 현실에 맞서 치열하게 고민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조사결과가 처음 나왔다.

영남대 한국근대사상연구단(단장 최재목 교수·철학)은 지난 1년 동안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인문사회 기초연구 프로젝트인 ‘일제강점기 한국철학의 재발견’ 작업의 결과를 지난주 마무리했다.

▶본보 2006년 12월 20일자 A12면 참조
“일제 강점기 인문학 지킴이는‘신문’”

연구단은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국내 신문 가운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매일신보, 조선중앙일보 등 18개 신문의 모든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식민통치가 한창이던 1920∼1940년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3500여 건의 철학 기사를 찾아냈다.

인쇄가 흐릿한 당시 신문 기사를 한 자씩 컴퓨터로 옮겨 적는 작업 끝에 이 기사들은 책자 47권과 CD 15장 분량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한 뒤 귀국해 신문에 글을 쓴 학자는 한치진, 신남철, 전원배 등 80여 명. 이들의 글은 1200여 건에 이른다.

‘다산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실학(實學) 연구도 1936년을 전후해 신문 지상에서 왕성하게 논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인보와 최익한 등 당시 학자들이 1945년 이전에 발표한 것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실학 관련 글은 모두 58편. 이 가운데 48편이 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동아일보에는 29가지 주제로 78회에 걸쳐 실학 관련 글이 실렸고, 조선일보에는 17가지 주제로 22회 실렸다. 특히 동아일보에 정인보가 6회 연재(1934년 9월 10∼15일)한 ‘유일한 정법가 정다산 선생 서론(서論)’은 최초의 실학 연구물로 꼽혔다.

대구한의대 박홍식(52·한국철학) 교수는 10일 “최남선이 실학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조선역사강화’(1930년)도 동아일보의 간절한 요청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며 “일제강점기 때 신문은 실학 연구의 문을 열고 기반을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조선 식민 지배를 강하게 비판했던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인 오스기 사카에(大杉榮·1885∼1923)에 관한 기사도 1920∼1923년 동아일보에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최재목 연구단장은 “잊혀지다시피 한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의 대중적 활동을 체계적으로 되살린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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