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인연’ 남기고 떠난 ‘한국 수필의 아버지’

  • 입력 2007년 5월 26일 02시 53분


코멘트
한국 수필의 개척자인 금아 피천득 선생의 생전 모습. 90세가 넘은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 수필의 개척자인 금아 피천득 선생의 생전 모습. 90세가 넘은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피천득 선생의 삶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몸맵시 날렵한 여인”

자신의 글처럼 맑고 순수하고 단아한 일생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이 짧은 문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저릿해한다. 금아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의 마지막 부분이다. 젊은 날의 금아와 일본인 소녀 아사코의 만남과 헤어짐의 추억을 잔잔하게 묘사한 이 수필은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

25일 별세한 금아는 한국 근대 수필의 기초를 세우고 독자적인 미감을 만들어낸 수필 문학의 선구자였다. 자신의 글 ‘수필’에서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정의한 금아. 실제로 그의 글은 맑고 담백하면서도 향기로웠다.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영문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금아의 글에는 의고체나 번역 문투가 보이지 않았다.

금아는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 교내 문예지를 만들면서 문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의 글 솜씨를 눈여겨본 춘원 이광수의 권유로 16세 때인 1926년 중국 유학길에 올라 후장(호江)대를 졸업했다. 1930년 동아일보사가 발간하던 월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해 등단한 금아는 이후 문예지와 일간지 등에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그의 수필 주제는 일상적인 삶에 대한 애정 그 자체였다. 음악과 차, 꽃, 산책 등 평범한 일상이 금아의 글에 옮겨지면 소중하고 가치 있는 대상으로 격을 얻었다. 그래서 금아의 글은 평이한 듯 보이지만 읽고 나면 독자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여운을 남긴다. 그는 “정말로 잘된 글이어야 보는 사람이 기쁘고 쓴 사람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며 작품에 대한 엄격함을 잃지 않았다. 엄격한 정련을 거쳐 세상에 나온 그의 언어는 한국적 수필 문학의 전범으로 자리 잡았다.

금아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수필 창작을 멈추고 이따금 시를 쓰는 것으로 창작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는 종종 ‘늙으면 술을 마시든지 침묵하라’는 서양 격언을 인용하면서 “했던 말을 또 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할 말은 다 썼고, 한계도 여기까지다”라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1993년 시집 ‘생명’을 세상에 내놓았고, ‘세상사에 달관한 노인의 정갈하고 소년 같은 시심을 보여 준다’는 평을 받았다. 이 시집을 발간한 공적으로 금아는 1995년 인촌상을 수상했다.

막내이자 외동딸인 서영 씨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은 유별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수필 ‘서영이’에서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 ‘나에게 글 쓰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라며 큰 애정을 표시했다. 결혼 전날 눈물을 그치지 않는 서영 씨를 보다 못해 금아가 결혼식 참석을 포기한 일은 유명하다. 서영 씨는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물리학자 로만 재키 씨와 결혼해 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금아는 생애 내내 밝고 천진했다. 2002년 월드컵 기간에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지내 환갑 넘은 제자들을 놀라게 했다. 서영 씨가 갖고 놀았다는 인형 ‘난영’이를 밤마다 데리고 잤다. 잉그리드 버그먼을 ‘마지막 애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해서, 흠모하는 작가인 바이런, 셸리, 예이츠 사진과 함께 걸어 놓았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 시절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최근까지도 금아를 찾아가 함께 점심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었다. 지난해 2월에는 출판인 모임인 은석회의 초청으로 출판계 최고령자인 을유문화사 정진숙(94) 사장 등 출판인들과 만나 우리 시대 책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1939년 결혼해 해로해 온 아내가 6년여 치매로 고생해 왔지만 금아는 속상해하기보다 아내가 점잖게 치매 증세를 보이는 데 감사했다. 그만큼 선하고 순수했다.

소년처럼 순수했던 금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담백한 글과 함께 단아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저세상으로 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