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의 아줌마 사장님들 “희망 나눠 행복 얻었어요”

  • 입력 200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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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협동조합 살림의 일꾼들. 왼쪽은 강북 평화의집 임현애 수녀.
재활용협동조합 살림의 일꾼들. 왼쪽은 강북 평화의집 임현애 수녀.
솔샘일터에서 신덕례 씨가 옷감을 자르고 있다. 윤완준 기자
솔샘일터에서 신덕례 씨가 옷감을 자르고 있다. 윤완준 기자
《정옥순(52·여) 씨는 가난을 창피해했다. ‘공순이’란 말을 들으면 주눅이 들었다. 가난한 그의 얼굴은 항상 어두웠다. 14년이 지난 지금 정 씨는 여전히 임대아파트에 사는 가난한 아줌마지만 표정은 밝다. 그는 가난한 일꾼이 곧 주인인 특이한 일터에서 일한다. 정 씨가 일하는 곳은 솔샘일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재개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자활·자치운동을 위해 세운 삼양동(미아 1, 2, 6, 7동 일대) 선교본당 솔샘공동체의 하나다. 솔샘일터와 재활용협동조합 살림, 솔샘공부방이 있다.》

가파른 산길에 낡은 집이 빼곡했던 달동네 삼양동. 1990년대 재개발이 시작된 이후 지금은 모두 헐리고 임대아파트가 들어섰다. 솔샘공동체 사람들 대부분은 맞벌이 일용직 근로자와 독거노인들이다. 1991년 당시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이던 이기우 신부가 가난의 아픔을 주민 스스로 극복하자며 솔샘공동체를 세웠다. 1987년 4월 출범한 빈민사목위원회는 이렇듯 조용히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솔샘일터 아줌마들은 성직자와 수도자, 성가대 옷을 만든다. 이곳 일꾼 모두 다달이 월급에서 일부를 출자하는 ‘사장님’이다.

1993년 정 씨 등 아줌마 3명이 빈민사목위원회의 대안금융인 명례방협동조합에서 1600만 원을 출자 받아 시작했다. 경영에 초짜인 아줌마들이라 마음 맞추기가 힘들 때도 많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여기까지 왔다. 월급은 여느 봉제공장 수준이다. 조합원 자녀 학자금도 지원해 주고 이익금 중 일부로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는다.

“여기서 일하면 사람이 변해요. 마음을 열고 서로 믿게 된답니다.” 이곳 대표 신덕례(47) 씨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조합원 중에는 신자가 아닌 김은숙(36) 씨도 있다. “다른 곳에서는 가난하다는 얘기를 안 했어요. 깔볼까 봐. 그런데 여기서는 말 못할 고민까지 다 얘기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공장에 친구들을 데려올 정도다. “부모가 기쁘게 일할 때 아이들은 노동의 즐거움을 배우죠.” 정 씨의 말이 곧 솔샘일터의 존재 이유다.

재활용협동조합 살림의 아줌마들은 헌 옷을 판다. 이들은 서울 곳곳을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수거한 헌 옷을 모아 동네 주민들에게 판다. 제법 장사가 잘 돼 3호점까지 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남편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주부 윤순이(42) 씨가 대표다. 최창난(48) 씨와 김의숙(64) 씨도 살림의 일꾼이자 조합에 매달 출자하는 주인이다. 넉넉하진 않지만 스스로 일터를 꾸린다는 자부심이 크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곳이 선교본당이다. 임용환 주임신부가 사는 작은 집인 이곳. 일요일마다 솔샘공동체 사람들은 이 집 마루에 모여 미사를 드린다. 솔샘일터 아줌마도, 살림 공동체 아줌마도, 강북 평화의집 수녀님도 모두 모인다. 미사가 끝나면 같이 점심을 먹는다. 웃음소리와 왁자지껄 즐거운 소리가 넘쳐난다.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수녀들이 꾸려가는 강북 평화의집은 선교본당의 상담과 교육, 가정방문을 도맡는다. 수녀들은 임대아파트에서 주민과 함께 산다. 임현애 수녀는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도 느끼게 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냥 먹고 마시고 돌아다녔는데도 사람들이 따랐다고 한다. 삶을 공유했기 때문이라는데, 솔샘공동체가 꼭 그랬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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