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생명을 찬양하는 ‘풀꽃들의 합창’

  • 입력 2007년 4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4, 5도쯤 낮은 이곳 내변산 골짜기는 지금 흩날리는 산 벚꽃 잎이 분분하다. 어느 순결한 이의 넋인 듯 맑은 개울물에 떨어진 낭자한 연분홍 꽃잎은 가슴에 애잔한 서러움을 몰고 온다. 이 산에 와서야 비로소 4월의 바람, 그 빛깔을 보았다. 연둣빛, 그것은 생명의 빛깔이자 소멸의 색이기도 하다. 꽃잎이 지고서야 피어나는 연둣빛, 그래서 4월의 바람은 생명에 대한 잔인한 사랑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국 야생화의 대부인 김태정 박사와 ‘선생님과 함께 가는 우리 들꽃사랑’ 회원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그들은 마당에 내리면서부터 연방 탄성을 자아내며 여기 저기 지천으로 피어난 풀꽃과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다. 마치 우리 집 마당이 생명의 보물창고라도 되는 듯 그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은 생명의 보물을 꺼내곤 했다.

언덕배기 텃밭은 물론 자갈만 뒹구는 척박한 마당과 방문 앞 토방까지도 제멋대로 뿌리를 내리고, 무엇이 급한지 엄지손가락만 한 키로 의기양양하게 꽃을 피운 풀까지 씨앗을 맺기 전에 뽑아내야 한다며 식구들은 매일 호미질을 했다. 시골 생활에 풀들은 그만큼 성가신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그 풀들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야생의 향기에 코를 대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놀라웠다. 그냥 풀이라고 지칭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제각각 고유한 이름을 달고 있다는 것이, 잘 아는 민들레며 냉이에서부터 광대나물, 개불알꽃, 별꽃, 개별꽃, 산자고…. 누가 붙여줬는지 알 수 없지만 이름을 부를 때마다 여린 목숨들이 보석처럼 환해진다. 미처 몰랐다. 내 뜰에 그렇게 아름다운 보물이 가득한 것을….

한 지인은 그랬다. 깨달음이란 곧 생명에 대한 경외심의 자각이라고. 그래서 깨달은 자의 심안으로 보면 세상 만물이 모두 부처님이요, 은혜로운 존재일 터다. 세상의 평화가 깨지는 것은 어쩌면 점점 더 건조해져 가는 인간 생명의 존엄에 대한 부재가 아닐까. 이번 버지니아공대의 참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인디안 수족의 기도문을 읊조려 본다. “당신이 모든 나뭇잎(풀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라고.

강숙원 원불교 변산원광선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