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환 서울여대 서양화과 교수가 여러 곳에서 밝힌 회화관을 정무정 덕성여대 교수가 평론에서 소개한 대목이다. 오 교수에게 작품은 서양의 재료를 가지고 동양의 명상을 표현하는 과정, 즉 오랜 침묵과 기다림 끝에 번개처럼 번뜩이는 깨달음의 표현 과정인 것이다. 그는 “화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와 비슷한 직관을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 교수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리씨갤러리(02-3210-0467)에서 5월 30일까지 작품전을 연다. 프랑스 전시 이후 2년 만에 여는 이 전시에서 관객들은 얼마나 작가의 직관적 행위에 공감할 수 있을까…. 오 교수가 이전에 발표한 ‘곡신(谷神)’ ‘적막(寂寞)’ 시리즈에 이어 내놓은 ‘변화’ 연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작들은 푸른색이나 회색이 대담한 붓질의 흔적을 안고 화면의 바탕을 이루는 가운데 여러 색의 선이나 점들이 찍혀 있다. 그 선이나 점은 정형이 없으며 때로는 기운찬 직선으로, 때로는 깃털처럼 가벼운 곡선으로 움직인다. 오 교수는 새의 깃털을 이용해 선의 맵시를 표현할 때도 있다. 바탕의 두꺼운 색면은 오랜 기다림이나 침묵의 바다를 가리키고, 선이나 점은 순간에 번뜩이는 ‘새로운 해석’인 셈이다.
오 교수는 화면의 바탕과 선의 충동을 느끼기 위해 1년을 기다릴 때도 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행위와 그 속에 관객을 동참시키는 과정을 통해 속도가 미덕이 돼 버린 현대 생활에 한방 먹이는 셈이다. 선 중에는 고대 쐐기형 문자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도 있다. 그는 “그때에는 사람들이 착했지 않았느냐”며 웃는다.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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