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 100번째 作‘천년학’ …젊은 관객들은 어떻게 볼까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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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때와 똑같으시네요.”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 시사회 직후 송화, 아니 오정해는 기자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이 말은 ‘서편제’(1993년)의 송화이고 싶은 오정해 자신의 소망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14년을 훌쩍 뛰어넘어 스크린에 다시 나타난 한없이 착하고 순한 송화. ‘소리는 한을 품어야 제대로 나온다’는 소리꾼 양아버지 때문에 눈이 멀게 되는 ‘서편제’의 송화 이야기는 ‘천년학’에서도 계속됐다. 송화는 남남이면서 남매로 자란 동호(조재현)와 엇갈린 사랑을 이어간다.

영화는 아버지 유봉(임진택)과 함께 유년시절 남매가 살았던 곳이나, 이제는 쇠락한 선학동 주막을 동호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동호는 옛 친구인 주인 용택(유승룡)과 술잔을 기울이며 과거를 회상한다.

남매는 서로의 소리와 북장단을 맞추며 애틋한 마음까지 품지만 동호는 가난 때문에 집을 떠난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자신의 마음속 연인에게 흑심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자신들의 의지보다는 주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두 사람은 자꾸 비켜가기만 한다. 그 과정에서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이 계속된다.

영화는 동호가 제주도로 송화를 찾아가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송화가 혼자 사는 집에서 중동으로 떠나는 동호에게 라면을 끓여 준다. 그러면서 송화는 동호가 군대에서 탄피를 갈아 만들어 준 반지를 만지작거린다. “그 반지를 끼고 있네.” “네가 자꾸 닦아 주지 않으면 녹슨다고 해서.” 그러면서 송화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다. 이 순간은 남매의 만남이 아니라 연인의 이별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다음 날 동호는 송화에게 ‘누나가 일하는 술집에서 잤다’고 하고 송화는 ‘그 주인이 네가 맘에 들었나 보다’라고 답한다. 절제의 미는 있을지 몰라도 절절함은 전해지지 않는다.

임 감독은 100번째 영화에서도 한국적인 정취와 한의 미학을 담으려 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성공했다. 정일성 촬영감독 특유의 유장한 영상미가 시종일관 스크린을 압도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영화는 심금을 울리는 판소리를 소재로 하면서 절제의 미까지 담으려 해 보는 이들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못했다.

판소리 장면이 너무 많다는 일부 지적이 있지만 영화 ‘서편제’로 귀를 터놓은 관객이라면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요즘 영화 관객은 젊다. 젊은 관객이 열광하는 젊은 감독들이 오마주를 바치는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서 그 관객들까지 좋아하리라는 법도 없다. ‘서편제’를 보지 않은 관객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그때와 똑같다…?’ 오정해는 그때 22세였고 올해 36세다. 12일 개봉, 12세 이상.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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