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2000년 새 IMF총재에 쾰러 선출

  • 입력 2007년 3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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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IMF야? 나 배연정이야!’

연예계에서 절약가로 소문난 코미디언 배연정(56) 씨는 1998년 7월 이런 제목의 에세이집을 냈다. 초유의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아래 있을 때였다.

그가 책에 소개한 노모와의 대화를 간추려 옮겨보자.

“아이엠에프가 뭐냐? 꼭 뭐 ‘아이고 아퍼’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어머니)

“진짜로 나라가 골병들어 아프다는 소리야.”(배연정)

“그래?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 아니냐?”(어머니)

“그렇지. 예전처럼 정신 못 차리고 노세 노세 하다간 망해.”(배연정)

“우리 집은 IMF 오기 전부터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서 ‘IMF 할아비’가 온다고 해도 더 이상 졸라맬 게 없다고 해라.”(어머니)

IMF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협정에 따라 환율의 안정화 등을 위해 설립된 국제금융기구다. 그러나 한국에서 ‘IMF’는 이처럼 극심한 경제난을 상징하는 단어가 돼버렸다.

믿었던 국가도, 직장도 ‘나’와 내 가정을 끝까지 보호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꽤 오랫동안 경제 위기의 체감 정도는 ‘IMF보다 더 힘들다’와 ‘IMF만큼은 아니다’로 가늠돼 왔다.

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한국에 요구해 한때 호환 마마보다도 무서운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가 1997년 김영삼 정부에 요구했던 방대한 이행 각서에는 김대중 이회창 씨 같은 당시 대통령 선거 출마자들까지 서명해야 했다.

2000년 3월 23일 IMF 총재로 선출된 독일인 호르스트 쾰러 씨는 전임자인 프랑스인 캉드쉬 씨처럼 한국에 위세를 부리기 어려웠다. 같은 날 한국은행은 “외환위기 이전의 경제규모를 회복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 한국은 IMF 구제금융 195억 달러 전액을 상환하면서 IMF를 졸업했다.

그러나 IMF 졸업이 IMF의 한국적 상징인 ‘경제위기’의 졸업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 ‘샌드위치론’ ‘제2의 외환위기론’ 같은 어두운 관측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로드리고 라토 현 IMF 총재도 얼마 전 “금융위기가 다시 전 세계를 강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다시 만나도 배연정 씨처럼 ‘너 IMF야? 나 코리아야!’라고 대범하게 말할 자신이 있는가.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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