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7년 美흡연소송 담배회사 패소 판결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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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기쁨의 완벽한 형태.”(오스카 와일드)

“하등 가치 없는 불타는 물질의 찌꺼기.”(빌 클린턴)

롤러코스터. 담배의 삶이 그랬다. 신이 내린 풀에서 악마의 유혹으로, 극찬과 낙인의 양 극단을 오갔다. 상류층의 특권이거나 하층민의 표상이었다.

인간과의 조우는 기원전부터. 고대 마야에선 신과 만나는 영매(靈媒)로 대접받았다. 악마로부터 임신한 여성을 지키는 마법(멕시코 마사텍 족)이기도 했다. 연기를 마시며 얻는 쾌감과 어지러움은 무당과 사제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다.

유럽에 처음 소개한 건 15세기의 콜럼버스. 처음엔 한낱 원주민의 신기한 선물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입에서 연기 내는 잎사귀’가 10년도 안 돼 유럽에서 가장 불티나게 팔리는 기호품이 될 줄이야. 콜럼버스는 평생 찾아 헤매고도 눈앞의 신대륙(아메리카)은 물론 담배라는 금맥도 몰라본 것이다.

인기는 날로 치솟았다. 상류 사회의 고급문화로 자리 잡았고, 의사가 권장하는 만병통치약이 됐다. “위장과 머리를 정화하는 거룩한 연기”(과학자 토머스 해리엇)라고 했다. 일본에선 격조 높은 다도(茶道) 예절에 쓰였다. 중국에선 20세기까지도 ‘마오쩌둥의 장수 비결’로 선전됐다.

문화적 입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셜록 홈스의 파이프는 이성과 통찰력을 지닌 신사의 상징이었다. 마네, 고흐, 피카소 등 수많은 화가의 모티브도 됐다. “동양에 대한 탐미와 자유정신의 분출”(이반 칼마르)이었다. 여성이 쟁취해야 할 해방 운동의 쟁점이기도 했다.

몰락은 20세기에 찾아왔다. 인체를 갉아먹는 중독 물질. 1954년 최대 담배생산국 중 하나인 미국에서 최초의 유해소송이 제기된다. 쉬울 리야 있겠는가.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담배회사는 40여 년을 버텨냈다. 1997년 3월 17일 미국 대법원은 결국 담배 피해 환자의 손을 들어줬다. 무소불위의 담배가 ‘뒷방마누라’로 전락한 순간이다.

흡연은 백해무익하다. 주위에도 피해를 끼친다. “건강과 도덕을 망치는 미개한 관습”(켈로그 박사)이다. 그러나 담배는 죄가 없다. ‘연기를 마시는 유일한 포유류’가 스스로 선택한 업보다. 아담이 따 먹은 게 사과의 탓일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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