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범석]‘연예인 초상권’에 볼모로 잡힌 관객

  • 입력 2007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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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좀 데리러 와 줘….”

24일 오전 1시 집에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송영주(43·여·서울 서초구 양재동) 씨는 딸 이유선(15) 양의 목소리에 놀랐다. 전날 밤 그룹 ‘동방신기’ 콘서트를 보러 간 딸을 애타게 기다리던 끝에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으로 달려간 송 씨는 딸 또래의 여학생들이 아우성치고 있는 모습을 봤다. 이들은 공연 전 맡긴 휴대전화기와 디지털카메라 등 소지품을 돌려받느라 정신없었다. 송 씨는 “그나마 딸은 일찍 찾은 편이어서 오전 2시경에 귀가할 수 있었으나 물건을 찾지 못한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계속 기다려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1000여 명의 외국인 관객을 포함해 모두 1만2000여 명이 몰렸다. 공연을 주최한 SM엔터테인먼트 측은 ‘동방신기’의 초상권 침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관객의 디지털카메라,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등을 수거했다.

문제는 공연이 끝난 뒤 발생했다. 소지품을 찾으려는 관객들이 한꺼번에 몰린 데다 반환 장소가 3곳뿐이어서 상황이 뒤죽박죽된 것이다.

관객들이 대부분 10대 여학생이어서 뒤늦게 달려온 부모들이 주최 측에 자녀를 찾는 방송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해 온 이들은 “함께 보러 온 친구들이 짐을 다 찾아야만 집에 갈 수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항의가 거세지자 주최 측은 김밥 등 간식을 제공하고 3만∼5만 원의 교통비를 지급했으나 오전 4시까지도 귀가하지 못한 관객이 적지 않았다. 이 양은 “친구 중 한 명은 MP3를 못 찾고 집에 왔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다음 날 ‘동방신기’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준비 과정이 미흡했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사과의 글을 띄웠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가수들의 초상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며 주최 측의 사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전 2시에 귀가한 김영주(19) 씨는 “공연장에서 소지품을 수거하는 데만 몰두한 주최 측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밤 주최 측은 자기 권리(초상권)를 지킨다며 팬들의 안전과 귀가 시간은 무시했던 것이다. 이날 사건은 기업뿐 아니라 공연에서도 소비자(팬)를 존중하는 태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 줬다.

김범석 문화부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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