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삶의 기록-자서전 30선]<5>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 입력 2007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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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하는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여러분은 단 한 번의 삶을 살며, 실수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배운다. 그것이 여러분의 목표이다.》

성공적인 자서전은 어떤 것일까? 독자가 저자의 위대한 삶에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가슴에 저자에 대한 사랑과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한 교훈을 은은히 남기는 글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와 일반인에게 두루 유명했고, 많은 사람이 “물리학계의 무서운 신동”이라 불렀던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이다. 그는 유쾌하고 재치 있고 수수께끼 풀이에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물리학에서 불멸의 업적을 남겼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대중을 위한 강연과 저술의 능력도 탁월해서 물리학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를 친근하게 기억한다.

우리가 100m 세계기록 보유자에게 감탄하듯이, 파인만에게 감탄하는 것은 그의 천재성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 본능적인 반응이다. 만약 이 자서전이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 데에 그치고 만다면, 그건 명백히 실패다.

새내기 물리학도로서 노벨상을 꿈꾸던 시절에 감히 영어로 읽으려 애썼던 이 책을 훌륭한 우리말 번역으로 다시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이 성공적인 자서전이라고 재평가하게 되었다. 과거엔 욕심이 앞서 감탄하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 호기심, 모험, 나만의 방법, 관습에 대한 무관심, 앎과 배움 그 자체의 즐거움, 놀이, 책 밖의 실제 세상 등의 핵심적인 화두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라는 제목에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파인만은 이런 말을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자주 듣는 사람이었다. 파인만은 나름대로 진지한데, 사람들은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왜일까? 파인만은 실제 세상에서 스스로 배운 반면, 사람들은 책과 권위와 격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배웠기 때문이다. 파인만은 즐겁지 않으면 안 하는 족속인데, 사람들은 하라면 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파인만은 수수께끼를 보면 군침을 흘리는데, 사람들은 울상을 짓거나 무시하거나 다수가 의지하는 권위자에게 달려가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권위와 겉치레에 반대하도록 배웠다”고 파인만은 말한다. 이 배움을 실천하면서 살기는 어렵다. 그리고 더욱 어려운 것은, 그렇게 살면서 진정으로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파인만은 사랑스럽다. 설령 그가 천재 물리학자에다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많은 사람은 과학의 즐거움에 관심이 있기보다 과학을 잘하는 비법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앨버트 R 힙스가 기억하는 파인만의 눈빛이 전하던 메시지, 그건 ‘물리학, 그 자체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니 파인만의 자서전에서 과학 잘하기 비법을 건질 가망은 일단 없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자. 혹시 과학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과학을 잘하는 비법이 아닐까? 더 나아가 파인만의 아버지가 남긴 가르침을 보라. 그것은 또 다른 과학 잘하기 비법이 아닐까? 자유로운 자만이 과학을 잘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틀에 맞지 않는 제 자신을 깎아내다 지치고 풀이 죽은 젊은이들에게 이 성공적인 자서전이 주는 교훈인 듯하다.

전대호 시인·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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