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원의 펄프픽션]딘 쿤츠 스릴러소설 ‘남편’

  • 입력 2006년 12월 2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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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정원사인 밋치는 유가 인상과 주택융자금을 걱정한다. 어느 날 그는 묘령의 유괴범들에게서 아내를 납치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60시간 내에 200만 달러를 구할 것. 그렇지 않으면 아내의 손가락을 자르고 혀와 눈을 도려낼 것이라고 경고한다. 누가, 왜 하필 은행 잔액이 1만 달러밖에 없는 가난한 밋치의 아내를 유괴한 것일까. 과연 밋치는 무슨 수로 200만 달러라는 거액을 구할 것인가.

딘 쿤츠의 스릴러 소설 ‘남편’은, 우리 식으로 치자면 영화 ‘올드 보이’ 더하기 ‘공공의 적’의 내용을 담고 있다.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과정은 ‘올드 보이’와 비슷하고, 범인이 교활하면서도 매력적인 측근이라는 설정은 ‘공공의 적’과 닮았다.

세상 천지에 믿을 사람이라고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 아내밖에 없다. 스스로 이 난국을 타개하지 못하면 밋치도 아내도 모두 죽는다. 이제 가난한 정원사 밋치는 모종삽을 들고 “공주를 구하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슈퍼 액션 히어로로 돌변해야만 한다.

이름도 신성한(holy) 아내 홀리(Holly)는 밋치에게 스타워즈의 ‘레아공주’와 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미키마우스와 팅커벨 사이의 사생아라 조롱받을 만큼 쾌활하고 낙천적이다. 여느 아내처럼 잔소리를 하거나 바가지를 긁지도 않는다. 밋치는 천사표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잔혹한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최후의 순간 ‘넌 누구냐’라고 묻는 악당의 물음에, “난 남편이야”라고 멋들어지게 답한다. 도대체 남편이 뭐기에.

딘 쿤츠가 쓴 책은 매년 1700만 부 이상이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와처스’, ‘벨로시티’ 등 호러와 스릴러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2006년 최신작 ‘남편’은 등골 서늘한 공포보다는, 따스한 가족애를 전달한다. ‘플레이보이’지는 “스티븐 킹이 소설계의 롤링 스톤스라면, 딘 쿤츠는 비틀스”라고 빗댄 바 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장르 불문하고 가족의 재건을 내세운 스토리가 인기다. 딘 쿤츠의 ‘남편’은 ‘등 돌리면 남’이라는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다. 바야흐로 ‘섹스 앤드 더 시티’, ‘프렌즈’로 대변되던 ‘싱글 예찬’이 막을 내리고, 지고지순한 가족주의가 득세하게 된 것이다.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거는 밋치는, 가족 붕괴가 문제시되는 현대 미국 사회의 로망인지도 모르겠다.

한혜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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