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서품 50주년 맞는 '장애인 친구' 천노엘 신부

  • 입력 2006년 10월 26일 17시 39분


코멘트
광주 북구 엠마우스복지관장인 천노엘(74·본명 패트릭 노엘 오닐) 신부는 장애인의 친구다.

지구 반대편인 아일랜드에서 건너와 50년 가까이 장애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준 천 신부가 28일 사제 서품 50주년을 맞는다.

아일랜드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56년 사제 서품을 받은 이듬해 한국으로 건너와 천주교 광주교구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광주 북동성당 주임신부이던 1975년 가까웠던 정신지체인이 급성 폐렴으로 19살 나이에 숨을 거둔 것을 보고 '장애인특수사목'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당시 병원에서 연고가 없는 소녀를 해부용 시체로 사용하게 해주면 장례를 치러주겠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천 신부는 "그동안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해주겠다며 거절하고 직접 교회 묘지에서 장례를 치렀다"며 "그 때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몸을 던지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금도 소녀의 묘비에 적힌 "사회를 용서해주렵니까. 교회를 용서해주렵니까. 나는 긴긴 동안 당신을 외면해왔습니다"란 말을 평생 금언으로 알고 살아간다고 말했다.

천 신부는 1981년 국내 최초로 광주 남구 주월동 주택가에 '그룹홈'(장애아와 일반인이 함께 거주하는 일반주택)을 만들었다. 그룸훔은 장애아 수용시설과 달리 사회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후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일하는 '엠마우스산업'과 '엠마우스 어린이집'을 드나들며 장애인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헌신했다.

그는 장애인이 봉사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가족임을 강조한다. 1997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제1회 장애인 인권상'을 주려하자 "장애인은 봉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며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장애인 4명과 함께 살고 있는 "고향은 아일랜드지만 한국에 살다보니 서구 매너도 잊어버렸고 난폭운전도 배웠다"며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한 평 땅만 있다면 광주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