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들여다보기 20선]<10>막대에서 풍선까지-남성 성기의 역사

  • 입력 200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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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자신의 신비 때문에 자기 의지를 이 세계에 관철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성이 언제나 그 신비의 살아 있는 상징인 음경에 자기 의지를 관철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음경은 자기들만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안녕? 나일세. 날 몰라보겠는가?

자네 중심 잡아 주겠다고 늘 붙어 다니지만, 실은 천방지축 건방이나 떠는 변덕쟁이 거시기일세. 내게도 멀쩡한 이름이 없는 건 아니나, 왠지 다들 거시기 거시기 하니, 그냥 편한 대로 가지 뭐.

이 친구 난데없이 왜 이러나 싶겠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좀 진지한 얘길 하려고. 모처럼 책을 한 권 읽었거든. ‘막대에서 풍선까지: 남성 성기의 역사.’ 한마디로 거시기인 내가 주인공인 셈이지, 껄껄. 프리드먼이라는 기자가 쓴 건데, 무엇보다 책의 원제목이 맘에 들어. ‘A Mind Of It's Own.’ ‘나만의 본심이 따로 늘 있어 왔다’ 뭐 그런 뜻 아니겠나. 하긴, 자네 말 잘 안 듣고 되바라진 날 보면 딱이지.

하여튼 이 책은 그런 나와 자네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까마득한 옛날부터 파란만장하게 담아내고 있더군. 애초 나라는 존재는 삼라만상을 가늠하는 잣대나 다름없었지. 만물의 척도가 인간이고, 그 인간은 남성이었으니, 당연히 거시기인 내가 그 잣대일밖에. 툭하면 신격화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 아, 근데 아담과 이브가 나무열매 하나 잘못 따먹는 통에 내 신세도 망했지 뭔가. 그놈의 원죄를 내가 대대로 옮긴다는 거야. 졸지에 악마의 상징으로 전락해 버리더군. 나를 손에 쥐면 악마와 악수하는 거라나. 그 땜에 숱한 아녀자들 마녀로 몰려 새카맣게 타 죽었지. 사람 잡는 핑계엔 어김없이 악마의 거시기가 등장했으니까. 그 암흑시대에서 날 구해 준 분이 바로 다빈치 선생이라네. 그 양반 비록 내 몸에 칼 대고 헤집긴 했지만, 그를 통해 비로소 나는 살과 피를 가진 몸체가 될 수 있었던 거지. 풍요의 신도 악마의 막대도 아닌 인간의 일개 기관 말이야.

오, 그렇다고 내가 덜 중요해진 건 아닐세. 인간의 광기가 어딜 가겠나. 나를 내세워 또 사람 잡는 일을 벌이더군. 이번엔 마녀가 아니라 검둥이와 유대인. 거시기 생긴 게 흰둥이완 다르다나. 인간의 척도가 인종의 척도로 둔갑했을 뿐 기가 막히긴 마찬가지.

그런 거시기가 프로이트 박사를 만난 건 실로 행운이었지. 그분은 나를 통해 무의식이라는 미증유의 영역을 발견했거든. 인간과 거시기의 실체적이고 근본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다빈치 선생의 생물학적 쾌거를 프로이트 박사는 정신의 영역에서 이룬 셈이지. 아마 인간과 관련해 내가 가장 중대한 의미를 부여받은 시기일 거야.

그래서였나, 곧장 반작용이 오더군. 이번엔 여성 쪽에서 들고일어났어. 나는 또다시 내 본심과 무관하게, 남근이데올로기의 표상이 되고 말았지. 타도해야 할 정적(政敵)처럼 취급하더군. 웃기는 건 그래도 그때가 낭만이 있었다는 거야. 요샌 얄궂은 알약 하나로 나를 고무풍선처럼 멋대로 부풀렸다 말았다 하니, 말 잘 듣는 연장 나부랭이가 따로 없지.

어쨌든 책을 보니, 인간들 그동안 날 붙잡고 무던히도 못살게 굴었더구먼. 붙잡기 만만해서인가, 여하튼 물고 늘어지자 자기들 온갖 면면이 고구마 구근처럼 줄줄이 드러나는 꼴이야. 하긴 달리 보면, 자기 존재의 신비를 깨치려는 처절한 투쟁으로도 읽혀 가상한 점도 없지 않네 그려. 그래 봤자 내 본심은 여전히 따로, 오늘도 나 ‘꼴리는’ 대로 놀아날 테지만 말이야….

성귀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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