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들여다보기 20선]<7>남자의 탄생

  • 입력 2006년 9월 26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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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아버지 살해의 역사였다. 다만 그것을 아버지 살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새로운 세대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권위를 부정하고 아버지를 살해했던 그 사람들도 세월이 지나면 아버지처럼 권위주의의 화신이 되었다. 그들도 ‘동굴 속 황제’였던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근·현대사에 흐르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일관성이다. ―본문 중에서》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토록 흥겹고 포용력 넘치는 ‘화해’의 축제에도 ‘아버지의 자리’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아버지’ 자신이 “(여자가 되려는 아들을) 다시는 안 본다”며 스스로를 가두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더는 ‘아버지’이기를 포기하고서야, 자신 안의 ‘아버지’를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잔치에 자신을 기꺼이 초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저자 자신의 유년기에 돋보기를 들이댄 책이 ‘남자의 탄생’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의 집필 동기는 10여 년간 거듭해 온 실패한 삶의 경험이다. 저자는 가족 직장 친구 등 ‘관계의 실패’를 고백하면서 자신의 왜 실패했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그는 또 우리 사회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것이 사회 탓인지 개인 탓인지 함부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 일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물이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어머니의 공간에서 양육되고 아버지의 질서에 의해 완성되는’ 한국 사회의 남성은 ‘동굴 속의 황제’들이다. 동굴 속의 황제는 자신의 우월함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타인에게서 인정받으려 하며, 그 같은 신분관계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영토를 끊임없이 넓히려는 행동원칙을 가진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개방된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또 요즘 아이들이 “과거보다는 훨씬 더 개방적이며 훨씬 덜 위선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이끌어 줄 만한 통제 장치를 상실한 채 심리적 영토의 추구라는 황제적 특성만 강화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이런 교육방식, 육아방식이 계속된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동굴 속의 황제들의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동굴 속의 황제에서 벗어나는 길로 저자는 “내 안의 아버지, 네 안의 아버지를 살해하라”고 메시지를 던진다. 이것은 실제의 아버지를 죽이라는 무시무시한 패륜의 선동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이 각인된 ‘이상적인’ 사람의 이미지를 죽여 없애라는 의미이다. 아버지를 대신하는 또 다른 아버지가 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찍이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갈파한 것처럼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 반대 짝인 남성 또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껏 어떤 남성들을 만들어 왔으며 만들고 있는가. 남성 또는 여성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성별화되지 않은 개인을 만들어 내는 사회란 불가능한 것인가. 한국 남성의 가장 정직한 초상 중의 하나일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이다.

변정수 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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