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한 남자가 이 책 속의 ‘천연기념물’ 대목을 말하면서 내쉰 한숨 때문이었다. 그 한숨 속에 숨은 남성의 복잡한 심경이라니.
시오노 나나미는 남자들의 허영심을 교묘하게 부추기는 데 출중하다. 그 자신이 정의한 대로 ‘갖고 싶으나 갖지 못한 것을 선망’하는 남성의 특질을 포착하고 있다. 게다가 ‘남자들에게’라는 제목이니, 남자들은 마치 러브레터라도 온 듯 착각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착각은 자유다. 게다가 유럽풍의 러브레터이니, ‘냄새’부터 뭔가 다르다.
이 책은 초판이 1989년이니까, 아직 ‘불쌍한 남자, 흔들리는 남성성’이 대세가 아닌 시절에 나온 책이다. 유전자와 호르몬을 들이대며 남성을 적나라하게 과학적으로 분해하지도 않거니와 ‘먹이사슬, 정글, 위계사회, 신계층 사회’ 등의 구조 속에서 찌들어 가는 남성을 사회적으로 분석하지도 않는다. 하긴 그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어차피 삶이란, 과학서도 사회분석서도 아닌, 에세이다.
이 에세이의 첫 대목, ‘스타일’에 대한 정의에 이르면 거개의 남성은 솔깃해진다.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줄 아는 것이 스타일이다.” 나는 스타일이 있나 없나, 나는 ‘자기 냄새를 피우는 자’인가 아닌가, 나는 ‘매사에 대처하는 자세(스타일)’가 있나 없나, 남자들은 전전긍긍할까 아니면 자신만만해할까. 게다가 ‘천연기념물’의 대목에 이르면 남자들의 마음은 어디로 갈까?
이 책은 도도하다. 사치스럽다. 시오노가 그리는 남성성을 한마디로 하면 ‘섹시한 지성, 관능적인 권력’이다. 머리가 좋은 만큼 자기 냄새를 피울 줄 알아야 하고, 권력은 관능을 건드리는 능력이 없이는 허무할 뿐이다.
이쯤 해서 시오노의 남성관 또는 인간관을 비판할 남녀도 무척 많을 것이다. 권력에 대한 지독한 관심, 보통 능력을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지독한 호감에 질린다, 일본인의 유럽 콤플렉스다, 오죽 ‘로마인’에게 빠졌으면 ‘남자의 관능은 목덜미에 있다’며 로마 시대의 헤어커트를 탐탁해하느냐, 오죽 제국주의적 세계관에 빠졌으면 영국 신사의 자신만만한 분방함에 경탄하느냐는 둥. 시오노가 카이사르를 연인으로 삼고 마키아벨리를 친구로 삼았음을 안다면 더욱.
하지만 시오노의 개인적 호불호를 마땅해하건, 못마땅해하건 이 책은 ‘문제는 스타일이다’라는 시대적(?) 또는 영원불멸한 인간적 명제를 쿨하게 짚어낸다. 이미지와 콘텐츠를 어떻게 한그릇에 담을 것인가라는 명제다. 이 세상에 황금 자체에 반하는 인간, 황금의 광채에 반하는 인간 두 부류가 있다면 시오노는 단연 황금에도 반하고 그 광채에도 반하는 인간이다. 시오노는 스타일이 있다. 이 책은 스타일이 있다.
김진애 도시건축가 서울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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