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한국 사회 남성성이 달라진다. ‘뿌리 너무 깊은 나무’였던 가부장적 권위주의 남성상이 흔들리고 새로운 남성상들이 나타나 서로 부닥친다. 영화에서도 ‘영웅 같은 아버지’와 ‘어깨 처진 가장’, ‘터프가이’와 ‘꽃미남’이 엇갈린다. 남성상의 바탕인 남성성이란 처음부터 하나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역사 흐름이나 문화의 틀 속에 서로 다르게 만들어지고 부닥치고 새로 나타나곤 한다. 오래도록 가부장적 권위주의 남성상,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남성성이 마치 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남성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생각과 마음을 가두고 옥죄고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은 그리스신화의 남신들을 통해 남성성의 원형을 찾아 나선다. 원형이란 사람들 마음속 깊이 똬리 튼 채 저 안에서부터 성을 규정짓는 타고난 유형이다. 그 원형의 밑그림으로 무소불위한 권위주의 아버지인 제우스부터 신비와 황홀을 추구한 철없는 이단아 디오니소스까지 여러 남신이 등장한다. 이 원형은 신화처럼 개인에게 깃들어 있기보다 집단 무의식에 숨어 있는, 모두들 알게 모르게 갖고 있고 내면화시킨 무의식의 부분이다. 그러면서 감정과 이미지를 불러일으켜 살아 숨쉬는 개인의 존재며 행위, 생각이며 느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원형과 원형에 따른 유형화는 사람의 속성이나 성격을 대뜸 파악하는 데 쓸모 있지만 자칫 억지나 막무가내로 가르고 나눌 수도 있다. 사람은 그렇게 한 틀로만 꼴 지워진 존재는 아니다. 이를 테면 제우스 같은 유형이면서도 헤르메스나 아폴로, 그리고 디오니소스 같은 속성을 함께 간직한 남성도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의 장점은 원형의 틀을 분석하면서, 이를 통해 가치를 강화하고 힘을 부여하는 일정한 남성성의 강요, 곧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성격을 비판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오랜 역사를 통해 가부장적 권위주의 남성성의 틀은 다양한 유형을 무시한 채 유일한 남성성의 기준으로 대부분의 남성들을 억눌러 왔다. 사회의 제반 제도, 의식, 문화가 모두 그랬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지고 사람들도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지배했던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남성성의 원형도 사라질 때가 된 것이다.
정유성 서강대 교수 교육문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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