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눈 vs 의지의 눈… 신체부위를 통해 본 재난영화 비교

  • 입력 2006년 8월 3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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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본침몰’(31일 개봉)과 ‘플라이트93’(9월 8일 개봉)을 하나로 묶는 공통 요소는 재난이다. 전자의 경우 지진으로 불안에 떠는 일본인들에게 “우리가 침몰하면 어쩌지”라는 가상 자연 재난을 다뤘고 후자는 9·11테러를 얘기한다.

이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재난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인간은 쉽게 죽고 다치는 나약한 존재인 동시에 재난을 극복하는 주체다. 같은 듯 다른 두 영화 속 사람들의 모습을 신체 부위를 통해 뜯어봤다.

① 눈… 영웅 쳐다보기 vs 공포에서 단결로

‘일본침몰’은 1973년 개봉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당시 650만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원작인 고마쓰 사쿄(小松左京)의 소설도 같은 해 400만 권 이상이 팔렸다.

일본 쓰루가 만에서 발생한 대지진이 도쿄, 규슈 등 일본 전역에서 발생하자 미국 지질학회는 일본이 40년 안에 침몰하게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이를 의심한 일본 출신 지구과학 박사 다도코로는 독자적으로 조사를 실시해 침몰까지 시간이 338.5일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아낸다. 그는 잠수정 파일럿 오노데라(구사나기 쓰요시)와 함께 해저 플레이트에 구멍을 뚫어 ‘N2폭약’을 설치해 지반과 지진을 분리시키는 프로젝트를 감행한다.

영화는 블록버스터를 지향한 것과 달리 초반부터 주인공들의 눈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비주류 지식인 다도코로의 눈은 신경질적이고 불만에 가득하다. ‘338.5일 침몰론’이 정부 관계자들에게 무시당하는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오노데라의 연인이 되는 여성 소방구조대원 레이코(시바사키 고우)의 눈은 어릴 적 대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과거 때문에 내내 강한 척하려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은 결국 오노데라를 향한다. “나는 지금껏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았다.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알 것 같다”며 N2폭약을 설치하러 잠수함을 타는 그를 두 사람은 영웅처럼 쳐다본다.

반면 ‘플라이트93’에는 주인공이 없다. 9·11테러 당시 4대의 피랍 비행기 중 유일하게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UA93’ 비행기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탑승객 46명이 모두 주인공인 셈이다. 한 명의 레바논인과 세 명의 사우디아라비아인으로 구성된 범인들이 조종석을 탈취하고 승객들을 찌르는 순간 공포에 떨던 92개의 눈동자는 서로에게 “우리 어차피 죽을 거 뭐라도 좀 해봐요”라는 암묵적 신호를 보낸다. 결국 왕년의 조종사, 유도선수, 의사 등이 앞장서 범인들을 저지하는 이들, 공포를 이겨내려는 의지가 담긴 눈동자들이 빛을 발한다.

② 영웅의 손과 무기력한 손

‘일본침몰’에서 사람들은 자연의 괴력 앞에 처참히 무너진다. 무조건 산 위로 올라가라는 경찰의 지시도 산사태 한 번에 무너지고 해외로 이민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공항의 철조망을 쥐어뜯으며 발만 동동 구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는 오노데라의 손에 의지한다. 잠수함을 타고 들어간 그는 기계 조작으로 N2폭약을 해저 플레이트에 정확하게 올려놓지만 자신은 수압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플라이트93’에서 승객들은 비행기 안에서 고개조차 못 내밀고 벌벌 떤다. 처음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손가락으로 기내 전화기 버튼을 눌러 지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 정도. 하지만 곧 “이대로 죽을 순 없다”며 뜻을 모아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범인들을 제압한다. 무기조차 없는 상황에서 범인들을 뜯고 물고 때리는 승객들의 모습에서 적극성을 발견할 수 있다.

③ 머리… “단절에 대한 공포”

감독들이 영화를 만든 의도는 똑같다. ‘일본침몰’의 히구치 신지 감독은 “도처에 깔린 위기감과 공포감을 극도로 나타내기 위해 ‘단절’의 개념을 삽입시켰다”며 “해외로 도피하려는 일본인들을 받아주지 않는 미국, 한국 등의 모습에서 단절의 공포와 자연 재난에 대한 인간의 무기력함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플라이트93’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도 “90여 분의 비행시간 동안 밀폐된 항공기 안에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로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나타냈다”며 “이러한 외부와의 단절은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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