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석의 도시와 건축]건축을 즐기는 일본

  • 입력 2006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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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시절 짬이 나면 경자동차에 지도 하나 달랑 들고 국도 여행을 하면서 명건축물을 찾아다녔다. 그중 인상깊었던 곳이 효고 현 고베 시 롯코 산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롯코 교회(바람의 교회)와 롯코 집합주택이다. 당시 교토에 있었던 필자는 고속도로와 국도를 갈아타며 어렵사리 그곳을 찾아갔다.

롯코 교회는 호텔에 부속돼 결혼식을 위한 교회이고, 롯코 주택은 박스 매스의 조합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경사지 집합주택이다. 이 건축은 완성되자마자 작품성과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지명도에 힘입어 전문지뿐만 아니라 대중지에도 실렸다.

해외의 훌륭한 건축물을 찾아다니다 보면, 반드시 입지가 뛰어난 곳에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찾아가는 게 고생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처럼 건축물을 찾아가기에 편리한 곳도 없다. 지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거나, 정보가 많이 알려져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주민들의 자부심 덕분이다. 유명 건축물이 있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 슬쩍 묻기만 해도 과분할 정도로 상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롯코 교회와 롯코 집합주택을 찾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톨게이트에서 혹시나 하고 물었더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손수 그린 안내도를 내밀며 “수많은 건축가와 학생들이 구경 온다”며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필자가 특히 감동을 받은 것은 그 설명에 깃든 자부심이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안도 다다오가 간사이 지방 출신임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건축을 전공한 필자에게 건축의 개념 등을 설명하며 자기 의견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기도 했다.

유명 건축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요, 축제의 심벌이요, 관광 자원인 것이다. 그 지역 주민들은 도시 안에서 건축을 생활의 한 영역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건축이야말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아닐까. 더구나 이런 건축물들은 주택이나 교회, 미술관, 카페, 레스토랑, 사무실 등으로 크지는 않아도 작품의 완성도와 대중의 선호도를 조화시킨 것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는 유명 건축물이라고 하면 랜드마크적 조형을 갖추거나 뛰어난 입지의 건축물을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해외 유명 건축물을 찾아다니다 보니 외형에만 치중한 건축에 큰 의미를 느낄 수 없었다.

한국에도 지방자치단체의 주관으로 많은 건축물이 세워지고 있다. 대형 청사를 비롯해 문화회관, 대형 공연장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이런 건축물들은 앞에서 든 일본의 사례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비용도 많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점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그 웅장한 청사와 공연장, 회관들을 주민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즐기고 있는가, 그런 건축물들이 얼마나 많은 문화적 콘텐츠와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는가. 우리도 이젠 외형에만 치우칠 게 아니라 진정 ‘즐기는’ 건축을 가져보자는 뜻이다.

양진석 건축가·Y GROUP 대표 ygroupy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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