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7년 美1차대전 참전 선언

  • 입력 2006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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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월 중순. 영국 첩보부는 독일 외교장관 아르투르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에게 보낸 암호 전문(電文) 한 통을 손에 넣었다. 이른바 ‘치머만 전문’이다.

해군본부 내 정보국(40호실)은 암호 해독에 들어갔고 작업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영국은 중동에서 체포한 독일 첩자로부터 이미 암호문 해독서를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용은 놀라웠다.

‘만약 미국이 독일에 맞서 참전하면 멕시코 정부에 독일 동맹국으로 참전해 멕시코의 옛 영토인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주를 되찾을 것을 제의하라.’

중립국 미국을 연합군 쪽으로 끌어들이려던 영국은 엄청난 호재를 잡았다.

그러나 영국은 이 전문을 곧바로 미국에 알려 줄 수 없었다. 영국을 거쳐 멕시코로 전해진 과정에서 손에 넣었던지라 자칫 그렇게 했다가는 미국의 전문도 그간 영국이 도청해 왔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고민 끝에 영국은 이미 해독까지 끝난 전문을 다시 손에 넣기 위해 2단계 공작을 벌였다. 결국 멕시코 내 정보원을 통해 현지에서 수신한 전문의 복사본을 확보한 뒤에야 미국 정부에 이 내용을 전달했다.

당시 미국은 유럽의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1915년 영국 여객선이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해 미국인 승객도 128명이 숨졌지만 민주당 소속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외교 협상에만 의존했다. 민주당은 1916년 대선에서도 ‘윌슨 대통령은 미국을 전쟁으로부터 지켰다’는 구호를 내걸어 승리했다.

정작 미국의 골칫거리는 멕시코였다. 미국의 ‘뒷마당’으로 여겨 온 멕시코에서는 좌파 혁명과 반혁명, 내전이 이어졌다. 미국의 국경이 침범당하는 사건도 잦았다. 그런 상태의 멕시코가 독일과 동맹을 맺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등 뒤의 칼’이다. 이제 미국의 참전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윌슨 대통령은 4월 2일 의회에 대독일 전쟁 선포 승인을 요청했다. 의회는 나흘 만인 4월 6일 대독 선전포고를 승인했다. 미 정부는 곧바로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고 전세는 급격히 연합군 쪽으로 기울게 된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미국의 참전을 앞당긴 점도 있다. 하지만 참전의 결정적 계기는 독일의 서투른 외교와 영국의 탁월한 첩보전의 산물인 ‘치머만 전문’ 사건이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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